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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Jul 03. 2021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저자 이윤기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 노릇을 하면서 책의 바다에 빠져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 이미 시를 써서 친한 친구와 교환했고, 대학입학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단편소설을 한 편 썼다.

 입대해서 이등병 시절에도 단편소설 두 편을 썼고, 베트남전에 참가해 군대살이를 하면서도 글 읽기와 쓰기를 계속했는데 그 중 <하얀 헬리콥터>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여 그의 데뷔작이 되었다. 전투병을 은퇴하고 3~4개월 동안 영내 도서관에서 사서 노릇을 했다고 한다. 운수 좋은 과부는 넘어져도 가지 밭에만 넘어진다는 말이 있다. 책 좋아하는 전투병이 도서관 사서를 할 수 있었으니 자기만큼 운수 좋은 ‘과부’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윤기는 문학의 정점에 신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신화란 무엇인가. 신화는 결정적인 ‘인간의 꿈과 진실’이다.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누구나 영문도 모르는 채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이 땅으로 던져진다. 그 사건의 배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하고 묻게 된다.

 세월이 지나면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을 되풀이함으로써 또 하나의 아기 사람으로 하여금, 영문도 모르는 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죽음’의 경험을 되풀이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하는 경험이다.

 이 공통된 경험의 굽이굽이에 잠복해 있는 많은 사건들을 어떤 일에 견주어가면서 설명하는 이야기, 바로 그것이 신화다.     


 이윤기는 황지우 시인의 말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문학이라는 것이 본디 기도나 발원문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그것이 익을 대로 익게 되면 그 열매가 다시 종교의 뒷마당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이윤기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이 오래 살아남으면 그것은 종교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신화에 편입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문학의 열매가 이윤기의 말대로 살아남아서 신화에 편입되든지, 황지우 시인의 말대로 익을 대로 익어서 종교의 뒷마당으로 다시 떨어지든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문학이라는 것이 인간과 그 인간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저자는 자주 받았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된다고 대답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가 자기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껍진껍진한 입말(구어체)로 글을 쓰라고 권한다.      


 중요한 것은 글에 실린 생각이지 글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장 통에 있는 술집에 가서 그 어떤 말로 닭 모래주머니 구운 것을 시켜도 아줌마는 주방 쪽으로 돌아서면서 “똥집 한 사라...”라고 하는데, 그 말이 담고 있는 약간 자조적이기까지 한 그 정서를 담아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습한 언어가 아닌, 생득한 언어로 자기 존재의 진정성을 극한까지,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싶다는 저자의 마음을 배운다.

 그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그렇게 열정적인 문체로 번역하고, 그 조르바와 자기를 거의 동일시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언어 천재 이윤기는 그리스나 라틴의 고전어뿐만 아니라 첩보요원들이나 감옥의 죄수들이 쓰는 말 까지도 제 고향 말과 만나 낯익은 울림을 얻을 때에만 그 언어를 진정한 언어로 여겼다고 한다.


 저자가 소설가로서 번역가로서 가지는 언어에 대한 애정과 태도는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었다. 하나의 언어가 가지는 무게를 일일이 체감하고 독자들이 느끼게 될 그 언어가 갖는 질감까지 생각하고 글을 쓰는 그 치열함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경북 출신인 저자는 자연스럽게 쓴 지방어(사투리)때문에 시비에 걸린 적도 있다고 한다. ‘속닥하다’라는 말은 단촐하고 호젓한 어떤 분위기를 그리는 경상북도 지방어다.

 이윤기와 같은 경북출신인 나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 ‘속닥하다’는 사투리가 반가워서 혼자 빙그레 웃었다. 오늘 저녁에는 안주 두어 가지 장만해서 같은 경북 촌놈인 그 남자랑 ‘속닥하게’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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