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보니 그 집 딸, 태어나 보니 그 집 아들
“아무리 그래 봐야 피장파장 될 수 없는 걸 어쩌누, 꼭 같이 길을 떠나도 십 리밖에 못 온 놈이 있고 백 리, 천 리를 간 놈이 있다면 그래도 피장파장인가? 만만하지가 않다? 아암, 말해 뭣하누, 꿈도 못 꿀 일이지, 꿈도.”
토지 2부1권 142쪽에서 인용/ 마로니에 북스
재미있는 말이다.
꼭 같이 길을 떠나도 십 리밖에 못 온 놈이 있고, 백리 천리를 간 놈이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같이 길을 떠났는데 어떤 사람은 십 리밖에 못가고, 또 어떤 사람은 백리 아니 천리를 간다면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하는 걸까?
십 리밖에 못 온 사람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서간 저 사람처럼 죽을힘을 다해 뛰지 그랬느냐고 나무랄 수 있다.
‘더 노력했어야 한다’고, ‘다 니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십 리 밖에 못 온 사람은 애초에 백리를 간 사람만큼 체력이 강하지 못하여 더 빨리 달릴 수 없었다면 그것은 과연 그 사람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백 리, 천 리를 달려간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뛰는 능력이 월등히 우수해서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면, 그저 ‘운이 좋은 놈’이라고 부러워하는 것으로 그만인 것인가?
우리는 모두 ‘태어나 보니 그 집 딸’이었고, ‘태어나 보니 그 집 아들’이었다.
유전자와 환경이 결정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결과의 책임을 그 운(Luck)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달리기를 한 그 개개인의 책임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 때 우리 사회에서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10만부 남짓 팔린 그 책이 한국에서는 100만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요?
공정한 사회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