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흐르고 싶다

by 은해

강물은 언제까지나 흐르고 싶습니다.


봄의 선율이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음표의 꼬리를 살랑이며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 소리가 강가에 핀 버들강아지의 조그만 솜털들을 흔들어 깨웁니다.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봄의 전령이 춥다는 핑계로 게으른 몸짓으로 마지못해 흐르던 강물을 유혹하는 듯 간드러진 웃음을 흘리며 강물을 못 견디게 재촉합니다.

봄이 오고 있다고. 이제 곧 봄이 온다고. 녹진녹진한 봄기운이 강가의 언덕을 돌아다니며 개나리도 피어라, 진달래도 피어라 하며 온 천지의 식물들을 선동하여 봄의 교향곡을 연주할 거니까요. 강물도 그 보들보들한 봄의 교태에 마음을 빼앗겨 채신머리없이 춤이라도 추어볼 참인걸요. 봄의 전령의 재촉에 못 이겨 강물은 더 부지런히 몸을 놀려봅니다. 그 전보다 더 열심히 졸졸졸, 졸졸졸 흘러가며 봄노래를 부릅니다.

강물은 그렇게 봄을 노래하며 흐르고 싶습니다.


강물은 언제까지나 기다립니다.

아이들이 강가 언덕으로 봄나들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봄의 흥에 취한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있노라면 강물은 천상의 소리를 듣는 듯 마음이 그득히 차오릅니다. 강가에 피어있는 이름 없는 풀꽃들과 소풍 길에 철없이 떠들어대는 아이들의 수다가 향기가 되어 강물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강물은 그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마음 설레는지 모릅니다. 어린아이가 또 하나의 봄을 맞이할 때마다 쑥쑥 자라서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남자의 향내가 나게 되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가슴 벅찹니다.

어느 날 마음씨 고운 짝을 만나 이 강가로 데이트를 하러 온다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요. 그 아이들이 듣거나 말거나 강물은 있는 힘을 다해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응원하겠습니다. 그 아이들이 몰라줘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해주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그 사랑이 결실을 맺어 그 아이들의 아이를 만나보게 된다면 그건 강물에게는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보다 더 어여쁜 꽃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요. 내 아이를 키울 때보다 더 큰 정성으로 그 아기들을 품어주고 싶습니다. 그 아기들의 해맑은 미소 안에서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거든요. 그러면서 그 아기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오래오래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강물은 그런 희망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부지런히 흐르고 있습니다.


강물은 흐르고 싶습니다. 언제까지나 오늘처럼.

강물은 꿋꿋이 견디며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해인가 여름에는 큰 홍수가 나서 강이 범람한 적도 있었습니다. 비바람과 함께 천둥 번개가 쳐서 밤새 무서움에 떨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시뻘건 흙탕물을 숨이 가쁘게 빨리 흘려보내면서도 강물은 흐르기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강물의 숙명인걸요. 흐르고 또 흐르다 보면 어느 날에는 또다시 말간 얼굴로 고요히 흐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을이 되면 강가에 있는 억새밭이 은빛 물결로 장관을 이룹니다. 강바람에 흔들리며 나부대는 그 억새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집니다. 그럴 때면 강물도 외로움을 잠시 잊고 그들과 함께 가을의 정취에 취해보기도 합니다. 그들이 찍는 사진의 배경이 되어주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지요. 자기의 모습을 누구에겐가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봅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라도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꽁꽁 얼어버린 겨울 강가를 찾아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러 아픈 상처를 안고 겨울 강가를 서성이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기는 합니다. 꽁꽁 얼어버린 강물은 그저 무언의 위로를 보냅니다.


그래도 강물은 흐르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다 얼어버린 것 같아도 그 얼음장 밑으로 강물은 가만히 흐르고 있거든요. 강물은 언제까지나 흐르고 싶습니다.

강물은 잠들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밤이 와야 새 아침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강물은 밤을 위해 잠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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