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다에서 만난 어떤 절망

by 은해


그 바다는 울고 있었다.

‘쏴아....... 쏴아.......’하고 끝도 없는 슬픔이 밀려드는 듯 그 겨울바다는 차라리 숨죽여 흐느끼고 있다. 지나온 시간 속에 쌓여 있던 아픔들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온 몸으로 차가운 바위에 자신을 내던지듯 부딪치며 그렇게 몸부림치고 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위까지 닿았다가는 다시 물러서고 또 다시 바위에 부딪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검은 듯 푸른 바다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내뱉고 있다. 아니 쉼 없이 파도를 철썩이며 통곡하는 듯했다. 운명의 끈을 쥐고 있는 그 누군가를 향하여 애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하소연을 좀 들어달라고. 나의 괴로움을 좀 알아달라고.


그 바다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겨울바다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다른 한 여자는 무슨 주문을 외는지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두 손을 비벼대고 있다.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여자는 손에 마른 북어 한 마리를 거머쥐고는 꼬부리고 앉아 있는 남자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후려치고 또 후려치고를 거듭한다. 한참을 그러다가 이번에는 주문을 외던 여자가 또 다른 한 여자에게 무엇인가를 건네준다. 그걸 받아든 또 다른 여자는 봉지 안에서 무언가를 한 움큼 움켜쥐고는 남자의 등짝에다가 힘껏 뿌려댄다. 하얀 소금이다. 도대체 그 남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기에 그런 의식을 하는 것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무언가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자 하는 행위인 것 같다.

마른 북어로 등짝을 수 없이 얻어맞고 있는 그 남자와 그 남자의 등짝에다가 굵은 소금을 사정없이 뿌려대는 그 여자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다. 부부일 수도 있겠고 모자(母子)간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관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몸이 아픈 것일까.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조차 고칠 수 없다고 마지막 선고를 받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육체의 병보다 더 무섭다는 마음이 아픈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일까. 그 어느 쪽이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날 수도 있는 무언가 갈급한 문제가 있겠지.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미신이라거나 미신이 아니라거나 하는 문제와는 상관없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절망의 터널 속에 갇혀버린 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무슨 수를 쓰든지 그 터널의 어두움에서 빠져나오고자 하는 몸부림을 보았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 그 어떤 이름의 존재이든 그 힘을 빌어서라도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모습이 아닌가.

마른 북어라도 좋고 짭짜름한 소금의 힘이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어서어서 치유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바다를 바라본다.

그 바다에는 태양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겨울바다 수평선 저 멀리 끝자락에는 붉은 한 겹의 하늘이 아직 거기에 있다. 아니 오래도록 서서 바라보니 연분홍빛 장미꽃 색깔의 하늘이다. 어두운 터널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듯 마음이 조금은 밝아져 온다. 한참을 더 그렇게 바라보고 섰노라니 붉은 하늘 위에는 노란 호박고구마 색깔의 하늘이 또 한 겹이다. 노란 호박고구마 색깔의 그 하늘이 희망을 속삭이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 군고구마의 노오란 속살이 간직하고 있는 촉촉함과 부드러움 같은 것이 아닌가. 군고구마의 속살처럼 인생의 색깔이란 바로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세상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그 어떤 고통이라도 그것을 뛰어넘어 분연히 일어나면 저어기 그 곳에는 빛이, 온기가 그리고 따스함이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속초의 겨울바다에서 만난 사람살이의 아픔을 넘어서 수평선 끝에 걸린 구운 호박고구마 색깔의 희망을 간직하고 꿋꿋이 걸어가야지.

가는 길에 더러 만날지도 모르는 눈물 흘리는 사람의 뺨을 서로 닦아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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