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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줌 Aug 31. 2021

마음에 쌓은 악에서 악을 내고

#철학으롤밥짓는여자(7)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누가복음6:45)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는 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고 살기 어렵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말이라는 매개가 없이 누군가와 의사소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는 것은 필연이다. 최근 나는 코로나 밀 접촉자로 분류되어 열흘 이상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묵언 수행하리라 다짐하며 사실상 고립을 자처했지만 그렇다고 가족들과 아예 말을 주고받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묵언수행은 어디 가고 전화통화를 했고, 카톡도 주고받았고, 부득이한 경우 마스크를 쓰고 대화도 했다. 누군가 그것도 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놓이는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주고받으며 하는 말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가치관과 철학을 드러낸다. 우리는 말로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타인을 격려하기도 한다. 상호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말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말로 상대를 공격하기도 하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안에서 우리가 어떤 내용의 말을 어떤 식으로 표출하든 그 안에는 필연적으로 말하는 이의 가치관과 철학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문자언어와 SNS에서 사용하는 기호 문자까지를 포함한다.




가치관과 철학을 포함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성경에서는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마음에 쌓은 악에서 악을 내는데, 그 이유가 마음에 쌓은 것을 말로서 표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굴이 그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나타내는 거울이라면, 말은 그 사람의 정신과 마음이 표출되는 통로라고 하면 맞겠다. 결국 마음에 무엇을 쌓았느냐에 따라 표출되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평소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관심사에 따라 말의 주제가 달라지고, 그때 자신의 평소 생각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가치의 가장 깊은 곳에는 그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철학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 그가 하는 말이 곧 그 사람‘인 것이다.










한 동네에서 살았던 먼 친척 중 한 분은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분은 술을 안 드시면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며 웃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술이 들어가면 사람이 180도 바뀌면서 무지막지하게 화를 내며 입으로 주어 담을 수 없는 욕을 했다. 욕을 하다 지치면 살림을 부숴댔다. 그렇게 거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식구들을 밤새 앉혀놓고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며 잠을 재우지 않았다. 다음에는 살림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사람까지 때렸다. 나중에는 밖에서도 행패를 부리며 막무가내로 화를 냈다. 그분은 술을 마시면 왜 매번 그렇게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걸까? 왜 매번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했던 걸까? 그분의 삶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들은 얘기로는 어릴 적 총명했지만 6.25로 누이를 잃는 아픔을 겪었고, 가족 중 한 사람이 월북을 하며 연좌제에 걸려 하는 일마다 막히고 안되었다고 했다. 전쟁통에 학업도 이어가지 못해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었다. 그분은 평생 분하고 억울한 감정이 쌓이며 술에 의지하게 되었고, 술이 들어가면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었다. 그분 마음 안에 쌓여있던 세상에 대한 억울함과 저항이 그분을 평생 괴롭힌 이슈였고 그것이 그분의 가치였다고 본다. 때문에 그분의 가족들은 제대로 건강하게 살기가 어려웠다. 가족들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그분은 노년에 양로원에서 쓸쓸히 돌아가셨다. 그분의 한(恨)이야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분노와 실패감을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살며, 입만 열면 욕으로 시작해 폭력을 끝냈던 걸 생각하면, 그분의 삶에 좋은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어쩌면 그렇게 안 좋은 기억들만 평생 붙들고 살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분과 같은 경우뿐이랴. 인터넷이 일반화된 요즘, 익명성을 담보로 하는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는 특히 걸러지지 않은 날것의 언어들이 난무한다. 사회생활은 얼굴을 마주 보고 만나서 하는 것이 전부였던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사회문제이다. 얼굴도 이름도 가리고 숨길 수 있는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감춰졌던 속내를 드러내며 거친 욕설과 비난과 공격을 퍼붓는다.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익명의 누군가에는 함부로 해도 되고, 어떤 짓도 괜찮다는 무서운 가치관인 것이다. 역시 그 안에 무엇을 쌓았느냐에 따라 표출되는 것이 달라지는 경우이다.




그 외 예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사람의 계속 미운 것만 보일 것이다. 어느 순간 자신을 자각하며 미워하는 마음을 멈추기 전까지는 마음 안에 생긴 미움은 점점 커지며 어느 순간 표출되게 되어있다. 미워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면 그다음은 컨트롤하기가 어려워진다. 마음속 가득 찬 미움이 말로, 표정으로, 제스처로, 몸짓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긍정의 에너지가 되는 열정뿐인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열정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나아가 죽이고 싶은 살의까지도 에너지가 된다. 이때 미움이나 살의와 같은 무시무시한 에너지 역시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둔 결과로 때가 되매 표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를 업으로 삼는 집단에서는 이런 원리를 활용하여 집단의 힘을 키우고, 나아가 범죄행위에 정당성, 즉 가치를 부여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도 반복적으로.










우리는 하루도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없다. 우리의 사회적 행위와 관계는 모두 말로, 언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을 멈춘다는 것은 사회적이든, 물리적이든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말은 필연적으로 그의 가치관과 철학을 반영한다. 차분한 사람은 차분하게 말을 하고, 가벼운 사람은 말도 가볍게 한다. 진지한 대화를 선호하는 사람은 말도 진지하게 하려고 할 것이고, 유쾌한 대화를 선호하는 사람은 말도 재미있게 하려고 할 것이다. 또, 마음에 억울함이 있는 사람은 조롱하거나 비꼬듯 말을 할 것이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을 비하하며 상대도 수동 공격할 것이다. 모두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 안에 쌓아둔 부정적인 것들을 걷어내고 좋은 마음으로 채울 수 있을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진짜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지만, 페르소나가 걷어진 자신의 진짜 내면을 직면하여 만나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찌질함과 초라함과 분노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 그다음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보아야 한다. 좋은 마음을 가진 것도 나지만, 악한 마음을 가진 것도 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런 나를 반복적으로 객관화 하여 다룰 때 점차 내면의 부정적인 것들과 분리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과 함께 의식적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책, 좋은 음악, 좋은 생각으로 내면을 채워간다면 과거야 어쨌든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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