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울림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by Sapiens

아침 6시 30분, 오늘은 여느 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오전 9시 서울행 비행기를 타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난 덕분에 분주했을 아침 시간이 여유로운 시간이 되어주었다. 차분히 밤 사이 얼굴 위로 품어낸 각종 피지와 분비물들을 씻어내고,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있다. 의식의 흐름은 샘물을 품어내 듯 특별한 감정으로 흘러가고 있다.

평범한 어제와 같은 일상의 시작이지만 나의 신체 모든 부분이 조금씩 성장하여 변하였고, 눈으로 느끼지 못하지만 나의 주변 모습도 분명 어제와 다른 하루가 펼쳐지고 있다. 미세하지만 눈가에 있던 주름의 깊이도 깊어졌을 것이고, 머리카락의 길이도 0.3밀리미터 정도 자랐을 것이며, 손톱 발톱의 길이 또한 하루만큼 자랐다. 내 이마 왼쪽 눈썹 위에 자리한 지름 10밀리미터의 검버섯의 크기도 조금은 커졌을 것이고, 검 으스름 한 옅은 갈색의 농도 또한 짙어졌을 것이다. 나의 몸속에서 호흡하고 있는 모든 내장 기관들도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하며 나를 지탱해주느라 그만큼씩 노후되어 오늘을 맞이 했을 것이다.

내 침대 머리맡에 있는 협탁 위에도 하루만큼의 먼지가 쌓여 있다. 분명히 어제와 다른 새로운 하루이다.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어제와 너무도 흡사한 하루를 아무 의심 없이 똑같이 맞이한다. 오늘이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라던 오늘이라는 사실을 오늘 하루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는다. 계곡에 흐르는 물을 보면서 작년 가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계곡물이라 생각하고, 앞마당의 감나무를 바라보면서도 언제나 변함없이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한결같은 모습에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 물과 그 나무의 미세한 성장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우린 그들을 자신만의 시선과 기준으로 바라보고, 판단한다.

젊은 날의 일상들도 그렇게 반복되는 많은 시간들 속에서 흘러갔다. 항상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반복되는 생활에 지겨워하기도 했으며, 변화하는 삶 속에서도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또 다른 변화만을 갈구하며 살아왔다. 내 삶은 항상 무언가를 갈구해 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무언가 갈구하는 자신의 관심조차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이 만든 허상만을 쫓으며 타인의 삶을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불안한 삶 속에서 맞서다 부딪히고 때론 넘어지고 포기하며, 그리고 타협하는 법을 터득하고 수용하며 살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다 보니 어느 날 문득 특별한 감정이 선물처럼 찾아왔다.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온 나에게 잠시 멈춰 서서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속삭여주기도 한다. 핑크 마티니의 ‘초원의 빛’을 들으며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내 육체를 잔디 위에 기대어 보듯, 나의 일상의 모습 속에 잠시 정지 버튼을 눌러본다. 그리고 나의 세상을 바라본다. 나의 몸, 내 마음의 움직임, 내 감정의 흐름, 내 주변의 사물 하나하나를 소중히 만져보며 느껴본다. 그것은 내 삶을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집중해서 온전하게 그 시간을 만끽하는 행위인 것이었다. 그러한 것들이 전하는 미세한 신호들을 해석하고 공감해보는 일은 나 자신에게 참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그렇다.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나와 관계된 모든 요소들은 항상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변화되어 성장하고 소멸해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하다. 포근한 이불속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도 행복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차를 마실 수 있어서, 거실로 걸어가 커튼을 걷어낼 때 거실 바닥을 향해 비추는 따스한 햇살을 느낄 수 있어서, 음악을 틀어 놓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청각이 아직까지 정상이어서 다행이다.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 속 빨래를 털고 두 손으로 옮길 수 있어서, 젖은 빨래들을 하나하나 건조대에 널 수 있는 팔다리가 아직까지 온전히 움직여 주어서 ‘난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며, 누리고 있는 사람인가’라는 아주 특별한 감정이 찾아온다. 그렇게 매일 난 어제와 다른 특별한 하루를 선물 받는다.

오늘도 잊지 않고 나에게 찾아와 준 평범한 아침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울림이 있는 아침이다. 그 울림을 느끼며 사는 것!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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