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장면을 기억 속에 저장하며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지워지거나 흩어지는 사진들이 있는가 반면, 인상적이어서 각인되고 오래될수록 짙어지는 기억 속 사진들이 있다.
어린 시절 동구밖 나는 천진한 얼굴을 한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버지의 육신을 담은 거대한 운구가 거리가 멀어질수록 짙어지며 한 컷의 장면으로 마음속에 점철되고 있었다. 그렇게 오십여 년을 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다.
그런 아버지가 떠나는 날, 어린 나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던 젊은 나이의 어머니가 고된 삶을 마감하시고 떠나가는 날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차가운 철판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온함에, 놀라움에 잊히지 않는 한 컷의 사진으로 저장되어 있다.
어린 내가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운명의 장난처럼 가슴팍에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품고 걸어가고 있었다. 떠나시는 길을 동행하는 길, 삶의 아이러니를 실감하며 걷고 또 걸었다. 영가가 아쉬워 떠나가지 못할까 봐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나의 과거가 되어가고 있는 삶의 기억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또렷하게 덧칠해지며 분명해진다. 어느 날 스치듯 찾아온다. 그날의 기억들이.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서랍 속 사진들이 펼쳐지며 뇌 속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난다. 길지 않은 만남의 시간이 되어주곤 하지만 나에겐 커다란 삶의 활력이 되어주고 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은 내 삶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죽어서도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생각에 가슴 시리도록 기쁘다. 그렇게 이별은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기억 속 사진은 빛이 바래는 만큼 더욱 촘촘하게 연결되어 누군가의 마음속에 각인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의미라는 옷을 입고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