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니셰린의 벤시>라는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 콜름이 어느 날 절친인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는 서로의 관계에 집착하는 파우릭의 파멸과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콜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이 영화를 보면서 관계에서 중요한 거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친하다는 이유로 들어가지 말아야 할 범위를 들락날락하며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곤 한다.
주인공 콜름도 친구와의 관계에서 어느 날 지루함을 느낀다. 그는 친구 파우릭에게
"이제 인생의 지루함을 둘 자리가 없어. 시간이 없어."
라고 소리치며 친구와 거리를 두고자 한다.
그러나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삶의 가치를 가진 파우릭은 끝까지 친구와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결국 그의 곁에는 어느 누구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물론 삶의 가치는 다양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간격을 둔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내 가치가 소중하든 타인의 가치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친하면 다 안다는 주인의식이 발동하곤 한다. 그러면서 유지해야 하는 틈을 허물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친구와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자식과의 관계, 부부간의 관계 등 모든 인간관계에는 허물지 말아야 할 거리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로 말을 함부로 하거나 개인은 공간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의 거리에서도, 일상생활의 거리에서도 누구나 침해받고 싶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지켜져야 하는 무언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가깝다는 말로 선을 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양면성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 놓여있다. 때론 서먹한 사이가 좋은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나의 인간관계에서의 거리의 간격은 몇 도일까?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지는 않은가? 관계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 그 균형 속에서 편안한 관계의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