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걸어가는 인생길에서 동반자가 되어주기도 나침반 역할을 자청해주기도 하는 것이 있다면 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가 들수록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하게 된다. 그들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오고 간다.
젊은 시절 힘든 나날의 연속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던 순간, 우연히 마주하게 된 친구가 있다. 이제는 나의 스승이 되어 공존하고 있다. 그는 쿰쿰한 냄새가 나는 서가 속 시선에서 벗어난, 구석진 곳에 앉아 있었다. 그와 눈을 마주친 건 정말 한 순간이었다. ‘방하’라는 글을 읽으며 손이 먼저 다가갔다. 좁은 틈 속에서 누런 색의 책 한 권을 빼내어 꺼내 집어 들었다. 딱딱한 하드보드의 겉옷을 펼쳐보았다. 내려놓음,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것이지? 꼬리에 꼬리를 묻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손은 빠르게 한 장 한 장 펼쳐 보이며 시선 속에 담아내고 있었다. 침묵조차 방해될 만큼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읽어내려갔다.
놓을 방, 아래하, 그와의 동침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와의 만남의 시간은 다른 세상 속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 시절, 방황하는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속에 계속해서 다른 친구들을 찾아 만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틈만 나면 그들을 만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십 대의 어느 날, 나에게, 세상은 다르게 펼쳐졌다. 나의 관점을 바꾸니 시야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어떤 상황이든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모든 상황은 다르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고통조차도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삶 속의 고통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타인을 탓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내려놓음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깨달음의 실체를 행할 수 있을 때, 즉 돈오하고 점수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우리 곁에서 항상 머물며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카르페디엠, 이 순간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순간, 행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순환하며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값진 보물은 그들의 육체 속에서 몸을 태우며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들과의 시간은 점점 나의 일상이 되고 있다. 그들을 만나고 나의 삶이 풍요롭고 기름진 옥토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삶은 누구를 만나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 이 순간, 누구와 함께 있는가? 그것이 나를 만들며 나를 길들이며, 나를 형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