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TV와 멀어졌음을 확연히 느낀다.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보니 일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은 이유도 있지만 예전보다 확연히 텔레비전과 마주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바보상자라고 불릴 만큼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유용한 프로그램과 콘텐츠들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텔레비전을 등한시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텔레비전을 대신할 손 앞의 작은 TV라고 할 수 있는 휴대전화가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다양한 기계들이 업그레이드되어 재탄생하는 일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노트북, 패드 등 TV를 대체할 물건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매체로 옮겨간 결과로 텔레비전에 노출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었다. 결국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경우와 같은 맥락이다. 몸집이 커지고 시각을 자극하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디자인되고 소비하도록 제작되고 있다.
발전이 좋은 건 만은 아니다. 진화한다는 것은 우리가 많이 사용할수록 성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노출되는 빈도가 높을수록, 수요가 많다는 이유로, 더욱 자극적이고 시각을 사로잡는 경향이 짙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자를 바보로 만드는 것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 무엇이든 자신이 취사선택을 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모아진다. 내가 선택이란 것에 대한 반대급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하나를 선택했을 때 주어지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잊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난무한 행위로 중독이라는 것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습관이라는 것도 자신을 길들이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해 본다. 습관도 자의적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텔레비전이 바보상자가 아닌 스스로 바보상자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주변의 사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의 문제이다. 단지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진화하며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매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소비자가 현명해야 한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을 통해 정보를 얻고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거짓 정보가 많은 시대에 노출되면서 많은 정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매장되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한 다양한 매체가 생겨나다 보니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TV도 존재하게 되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이 가지고 있는 장점으로 인해 많은 이가 선호하고 있다. 대화단절을 일으킨다고 외면하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다시 자신의 자리로 채워지기도 한다. 그것은 TV만이 가진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료한 휴일 릴렉스하게 쉬면서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며 편안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고 누군가와 수다를 떨지 않아도 시각적으로 대화를 하며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텔레비전은 필요악이기도 하다. 몸집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TV는 가격도 만만치 않다. 고가의 물건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텔레비전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모든 전자체품들이 소비재로 바뀌고 있다. 생산자들의 치열한 계획 속에 소비자들의 행위를 조장하게 힘은 어마어마하다.
결국 어떤 매체를 사용하든, 어떤 콘텐츠를 클릭하든 우리는 누군가 만들어낸 것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취사선택이다. 무엇을 취하고 버릴 것인가? 그에 따라 합리적으로 다양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주인이 되는 삶으로 변화될 수 있다. 나에게 텔레비전은 어떤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