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이 유쾌하지만은 않을 때가 있다. 잘잘못을 떠나 타인의 말이 거슬릴 때가 있다. 그러면 부지불식간에 불안한 감정들이 불어나 자신의 마음을 넘쳐버리기도 한다. 그런 일은 누구나 경험한다. 하지만 누구나 화를 분출하거나 분노에 휘말리지는 않는다.
날아오는 화살에 반응을 하지 않거나 자기만의 방법으로 대처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날아오는 화살을 방어하지 못한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매번 반복되는 화살에 그대로 당하듯 꽂힌다면 그것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알고 있는 타인의 행위에 대한 의도를 알아차렸을 때 그 이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행위의 원인을 드러다보면 행위자의 생존법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타인의 어리석음이요. 과잉반응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된 행위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타인의 분출되는 언어의, 표정의, 다양한 변화를 읽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매일 누군가의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한 무례함과 마주한다. 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예전에는 화를 내며 저항하고 마주하며 부딪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소모되는 에너지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무의미함 속에서 절실하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것은 상대방의 행위에 휘몰아치는 자신의 나약함에서 오는 반응이라는 사실임을.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건네는 분노를 받지 않는다. 바라보되 흡수하지 않는다. 들리지만 경청하지 않는다. 가끔은 쓰레기일수 있는 말들을 모두 주워 담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흡수하고 교감할 것인가? 취사선택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에너지를 비축하여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를 지배하거나 함부로 휘두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교양인이란 그러한 무례함을 이겨내고 누군가에게 배려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 행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감한다는 것은 배려이기도 하다.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어 길을 잃게 하지 말자. 한 번 흘러가버린, 쏟아진 감정들을 주워 담기는 힘들다. 그러니 아끼고 소중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매일 무례한 행위보다 함께 마주할 수 있는 따뜻함을 전할 수 있길 바라본다. 평온함은 누군가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일상 속 자중지란을 일으키지 않고 고요와 침묵 속에서 감정을 다스릴 수 있길 바라본다. 감정은 꾹꾹 눌러 담아놓는 것이 아니라 드넓은 평온 위에서 자유롭게 흘러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어느 날 분출되어 누군가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을 때 주변의 소중한 또 다른 나와 공존할 수 있다. 타인은 '나밖의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