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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어간다는 건

-그녀

by Sapiens


양철 지붕 아래에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는 기분은 어떨까? 그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려진 장면 속 그림 한 장이 각인되어 자리하고 있다.


초록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허리에는 약간의 주름이 잡혀있었고 헤어 밴드로 들어 올린 이마로 하얀 피부가 더욱 눈에 띄었다. 시선을 마주한 순간, 서로를 알아차렸다. 수줍은 듯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녀의 우아한 걸음으로 주변의 사사로운 것들은 시선 속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서로의 간격은 좁혀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린 처음 만났다.


줌으로 매일 보았던 그녀. 그래서 서로의 벽들이 허무어져 버렸을까? 그 어떤 거리낌도 없이 우린 서로를 향해 마음의 빗장을 걷어내고 마주 서 있었다.


그런 그녀가 홀로 빗소리를 들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같은 공간 속에 머물고 있는 자신이 느껴졌다. 참 신기했다. 어릴 적 스레트지붕이 전부이던 시절 툇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 나의 모습을 소환시키고 있었다.


빗소리만큼이나 차분하고 분명하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가끔 모닝페이지에서 윤독을 할 때면 멈추지 말기를 바라듯 빨려 들기 시작한다.


그녀가 보이지 않는 날에는 시선을 돌리며 화면 속에서 찾아보게 된다. 그러다 다시 시선 속에 등장하면 반가움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물들어간다는 것. 이런 것이 아닐까? 존재함에도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에게 활력을 주는 힘. 그녀는 그런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도 함께 하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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