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미금역 근처에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렸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즐비해 눈길을 끌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을 분별하지 않은 채 환영하듯 환한 미소로 맞이해 준다.
착각이었을까? 볼일을 보고 나오는 순간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노랗게 물든 나뭇잎사이로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진동하는 불쾌한 쾌쾌한 냄새로 뒷걸음질을 했다. 아차, 그러다 발바닥에서 '아그작' 무언가 짓밟히고 있었다. 온몸을 휘감기며 퍼져나가는 악취가 분한 감정을 일으키기에 분명했다.
순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잊은 채 발을 닦아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자신과 마주했다. 아무리 발바닥을 비비고 닦아내어도 덜어내지지 않고 냄새는 더욱 거품처럼 커져갔다.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생각했었다. 은행나무 사이로 걸으며 옷깃을 여미는 상상은 누구나 옅은 미소로 화답한다. 그러나 실제 은행나무는 예쁘지도 향기롭지도 않았다. 오히려 불쾌감을 더해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굴레처럼 느껴졌다.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풍기는 향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본다.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생각은 내가 머물었던 자리의 향기에 대한 생각으로 사로잡힌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악취를 풍긴 적이 있을까? 은행잎처럼 화려함으로 누군가를 유혹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짓밟히는 상처에 꿈틀거리며 상처를 온몸으로 토해낸 적이 있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타인이 아니라 내가 긁어 부스럼을 일으키는 경우도 다반사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탓하게 된다.
내가 던지는 화살의 날카로움은 보지 못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지나치듯 내뱉는 말 한마디는 비수처럼 꽂히기도 한다.
은행잎은 충격을 가하지 않는 한,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을 지켜내려는 보호막 하나 정도는 치고 있다. 그 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날을 세우며 자존심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온 몸속 긴장된 근육을 유연하게 존재할 수 있길 생각해 본다. 긴장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잠식해 버릴 흉기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 좋은 향기는 아니어도 악취로 변해버리는 대로 내버려 두지 말자.
내가 풍기는 향기 또한 때론 거두어낼 수도 있어야 한다. 마구 뿌려대며 덧칠해지는 향에 취하게 두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자신의 소임임을 명심하자.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 향기는 또 다른 향으로 전해지고 전해지며 다시 재생산되며 기억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