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쓴맛

by Sapiens

■글쓰기 프로젝트 | 211일 차 모닝페이지 | 어느 날 갑자기

<am.5:50>



그날도 여느 날처럼 흘러가고 있는 무심한 날이었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가는 거리의 풍경은 12월의 크리스마스를 물씬 풍길 만큼 향기로웠다. 아마도 거리에 장식한 트리장식과 가게들의 요란한 캐럴송 때문이리라.


오직 길 모퉁이에 자리한 허름한 카페에 앉아 좋아하는 커피 향을 맡으며 그 거리를 바라보는 그녀만이 구분 지어 존재하듯 보였다.


그녀는 카페라는 공간 속에 앉아있었지만, 온 신경은 조금 전 시간 안에 갇혀있었다.


"언어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전두엽이 많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이니 6개월 후에 다시 검사받아보시지요?"


인지기능검사 수치가 너무 낮게 나왔다. 1점도 채 되지 않는 수치를 바라보며 한참을 병원 로비 중앙에 서 있었다. 그녀의 주변은 새까맣게 덧칠해지며 모든 사물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순간, 그녀가 살아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억울하게 참아내던 자신의 모습, 억눌렸던 갑갑한 감정들, 그 누구에게도 소리 내보지 못한 언어의 파편들, 그녀는 억울한 감정들이 쏟아지며 떨리는 속눈썹 사이로 투명한 물방울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온기가 느껴지는 눈물방울들이었다. 철저하게 혼자였다. 그렇구나! 이런 것이구나! 살아간다는 것은.


그녀는 혼돈스러워 한참을 길 잃은 어린 소녀처럼 그곳을 두리번거리며 하염없이 숨 죽여 울고 있었다.


시간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정해진 추의 움직임처럼 수납과 예약을 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지하주차장 차를 빼는데 한참의 시간이 흘러갔다. 차량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뒷사람 몇 명을 양보해야 했다. 헛헛한 웃음을 지어보내며 차를 찾아 몸을 숨겼다.


'아, 내가... '


원망스러웠다. 그동안의 아파한 대가가. 누군가를 사랑한 대가가. 살아 숨쉬기 위한 호흡이 가빠오르기 시작했다.


이기적으로 살아야 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대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의 원인은 나에게 있었구나!


차를 몰고 눈물을 바람 속에 버리며 달렸다. 나의 감정을 아물게 해 줄 장소가 필요했다. 잠시라도.

차를 세운 곳을 둘러보았다. 지금 나와 다른 감정들이 피어나고 있는 거리의 생기 있는 모습들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시린 겨울이지만 유난히 따뜻했던 그해 12월의 어느 날. 그래서 길 모퉁이에 위치한 허름한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빈자리를 찾아 무거운 몸을 앉혔다. 의외의 푹신한 쿠션이 굳어버린 육체를 지지해주고 있었다. 좁은 공간의 카페 안은 짙은 원두향으로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카페 분위기에 빠져들다 보니 잠시 조금 전 벌어진 상황은 잠시 머뭇거리며 희미해지고 있었다.


잊힌다는 것.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추는 그래서 멈추지 않고 왔다 갔다 하는가 보다. '2%는 0%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시한부 인생을 살다 간 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아직 기억의 뿌리가 살아있다는 생각에 미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입안으로 들어오는 커피 향의 맛을 음미하기 시작한다. 쌀싸름한 커피맛처럼 우리 인생도 때론 쓴맛을 통해 달콤함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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