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너

-어린 시절 삶의 조각

by Sapi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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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너


sapiens


국민학교 4학년인 소녀는 두려움에 떨며 의자 위에 올라갔다
의자 위에 서서 뒤꿈치를 들고 곳곳 하게 힘을 주고 서야 한다
왼손에는 휴즈를 쥐고 오른손에는 드라이버를 들고 있다
갈고리처럼 생긴 로즈골드색을 띄는 휴즈가 반 조각이 나 있다
끊어진 부위는 불에 타버린 듯 진회색 빛으로 변해버렸다
쓸모없어진 휴즈를 꺼내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아직 집안은 깜깜한 어둠 속...
나이 드신 어머니가 촛불을 들고 불빛을 비추고 서 있다
한 달 사이에 이런 일은 빈번한 일이었지만 휴즈를 교체하는 일은 매번 공포스러운 일이다.


휴즈가 끊어지는 "탁" 소리가 날 때면 사방은 한순간 암흑 속에 존재한다
더듬더듬 걸으며 현관에 있는 두꺼비집으로 찾아가야 한다
감전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며 그 어린 소녀는 또다시 의자 위에 서 있다.


어둠 속 시간은 고요하다.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린다
끊어진 휴즈를 교체하는 동안 어둠과의 사투를 버리기도 한다
어린 소녀의 등줄기에 흐르는 땀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오히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과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손이 떨리며 휴즈를 잘못 끼울까 불안한 마음을 어둠이 감추어준다
어둠 속 일, 이분의 짧은 시간은 참으로 긴 시간이 되어준다.


갈고리 방향이 위아래가 반대로 되어있어 상. 하 그 고리 안에 전기 연결 부분을 끼운 후, 드라이버로 돌린 다음 고정시킨다
그리고 내려졌던 차단기를 원래대로 다시 위로 올리는 순간, 집안은 순식 간에 칠흑 같았던 어둠에서 밝은 세상으로 변한다.


그 순간, 밝은 존재인 너는 너무도 눈이 부셔 바라볼 수가 없다
매일 너로 인해 세상의 모습들을 보며 생활해 왔지만 그동안 당연하다고만 생각해왔음을 알게 해 준다
어린 시절 너는, 어린 소녀의 추억 속 친구이기도 하지
너의 몸에서 빛을 낼 때마다 소녀의 마음속에도 밝은 빛이 들어와 환하게 해 주었지
소녀에게 너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주기도 하는 존재였지.


지금 너의 모습들은 너무나 세련되고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어
하지만 소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너는 어린 시절 삶의 조각과도 같아.


그 시절 너는 어둠과 밝음... 그것의 의미를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존재였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한 존재가 아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도 빨리 알아버린 어린 소녀.
그녀는 오늘 너를 그리며 너의 눈부신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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