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나무

-하루만큼의 성장을 마시다

by Sapi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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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나무

sapiens


국민학교 시절,
집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안방으로 들어온 남자와 여자,

어머니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4.3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셨다. 그 당시 경찰들이 집으로 들어와 부엌에 함께 있던 남편이 잡혀가셨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고 남편 없이 혼자 키운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와 재가를 하셨다고 했다.

안방에 들어온 손님은 그 큰 오빠와 새 언니 었다. 항상 손님처럼 찾아와 대접을 받고 가던, 가족이면서 참 어려운 관계라는

어머니는 어린 소녀에게 부엌에 가서 커피를 타고 오시라고 했다.
소녀는 조심조심 문을 열고 나가 부엌으로 향한다.
그 시절 소녀는 성냥으로 불을 켜서 곤로에 불을 붙였다. 그리곤 주전자에 물을 넣고 찬장에 있는 커피 받침대와 세트로 있는 커피잔 두 개를 꺼낸다.

쟁반 위에 커피잔을 나란히 올려놓고 커피 한 스푼, 크림 한 스푼, 설탕 2스푼을 넣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린 소녀는 물이 끓지 않아 조마조마한데 안방에서 어머니는 커피를 빨리 가져오라 재촉하신다.

어린 소녀는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아도 끓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주전자에 물을 커피잔에 붓고는 스푼으로 저었다. 커피잔을 손으로 쥐어보니 온기가 느껴졌다. 나름 물은 따뜻한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쟁반을 들고 커피가 쏟아지지 않게 살금살금 걸어서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쟁반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찻잔을 쥐고 오빠와 언니 앞에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얼른 마시라며 나에게 관심 따위는 없었다.

마음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는데 새언니는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을 마시다 말고 그냥 내려놓는다. 소녀는 쟁반을 들고 앉아 있었다. 새언니는 소녀에게 말한다. 커피는 원래 물을 팔팔 끓어서 넣어야 한다며 어린 소녀에게 한마디를 한다.

그리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한다.

그날 어린 소녀는 처음으로 커피를 타본 것이었다. 주전자에 물을 부우면서도 부들부들 떨면서 넣었다. 혹시라도 흘리거나 넘쳐버릴까 봐...

덩그러니 방안에 놓인 커피는 그대로 남겨져 있었고 붉은 립스틱 자국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소녀의 마음에도 무언가 선명한 자국의 감정이 남겨지는 것 같았다.

그날의 커피가. 그날의 커피잔이 떠오른다.
성인이 되어버린 소녀는 커피 향에 취해 카페로 향하기도 한다.
커피는 너무나 강열한 존재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러고 보면 그날 난 커피존 재보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존재였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환경 속에서 존재하지만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생각하며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커피는 몸값이 높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더욱 인기 있는 존재가 되고 있다.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물질만을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물질만 바라보고 추구하다 보면 어린 시절 어른인 새언니처럼 국민학교 어린아이가 탄 미숙한 커피를 보며 상처를 주는 행위를 아무 생각 없이 자행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커피 크레마의 짙은 향을 음미하며 사색의 시간들을 한 번쯤은 갖고 자신을 반추해 보기도 한다며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에게 무심코 던지는 화살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른이 된 소녀에겐 커피 한 잔속에서 자라나는 상상의 나무가 있다. 소녀는 매일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만큼의 성장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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