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꿈을 향해
무소의 뿔처럼 씩씩하게 걸어가라
sapiens
딸아이가 내려왔다. 오프일이 되면 웬만하면 제주로 내려온다.
근무가 끝나고 늦은 밤,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일주일 만에 다시 내려왔다. 공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서 착륙 카톡이 오면 집에서 출발한다. 그제도 그렇게 밤 운전을 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게이트 1번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딸아이는 벌써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차 안에서 보이는 딸의 모습은 싱글벙글 행복한 모습을 온몸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덩달아 나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차를 도로변에 갖다 대면 어떻게 그리도 빨리 캐치하는지 얼른 달려와 차문을 열고 옆 자석에 않는다.
"엄마, 너무 좋다."
항상 내려와서 공항에서 픽업을 할 때 하는 말이다. 하루 쉬다가는 일정이어서 피곤할 만도 한데 딸아이는 너무 좋다고 연발이다. 집이 그렇게 좋은가 보다. 제주가 힐링이라고...
딸아이를 보며 나의 젊은 시절이 스친다. 나에게도 엄마와 함께하는 이런 시간들이 있었다면..., 잠시 푸념 아닌 푸념을 나의 마음에게 속삭여본다. 옆좌석에 앉아 있는 딸아이를 힐끗 바라보며 청춘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는 일주일 동안 있었던 자신의 일상들을 마구마구 토해내고 있다.
다시 현실의 나로 돌아온 나는 딸아이와의 대화 소리로 자동차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아직 이야기를 끝내지도 않았는데 집 주차장이다. 우리는 주차를 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항상 내려오는 날은 집에 오자마자 자기 방 침대에 드러누워 곯아떨어진다. 그 모습을 보며 사회생활이 만만하지 않음을, 그리고 돈 벌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딸아이의 마음이 그려진다. 그래도 자신이 견디고 경험해야 할 일이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기에... 묵묵히 바라봐줄 뿐이다.
다음날 아침, 유난히 일찍 일어난 딸아이가 밖으로 나가자 한다. 해야 할 일들과 함께 천왕사에도 가고 싶다고 한다. 날씨도 화창하다 못해 여름 날씨처럼 더울 정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볍게 차려입고 볼일을 본 후 천왕사로 향했다.
"엄마. 난 절에 들어가면 마음이 차분해져서 좋아."
딸아이가 불교가 맞나 보다. 함께 자주 가던 절이지만 못 간 지 8개월 정도 되는 것 같다. 오랜만에 찾아온 천왕사 진입로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무들이 베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고,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참 씁쓸했다. 우리는 천왕사 진입로를 그렇게 오르고 작은 입구 쪽으로 가서 주차를 한 후 대웅전을 향해 올라갔다.
대웅전 앞에 수많은 연등들이 스치는 바람에 춤을 추며 따스한 햇살에 맞닿은 면의 빛깔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다. 이런 장관을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다. 천왕사가 그래도 제주에서는 큰 절이기에 그런가...
순간, 달려 있는 연등들을 보며 인간들의 욕심들이 매달려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도 바라는 소망이 많은지... 우리는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잠시 머물다 나왔다. 그리고 나한님들이 모셔 있는 작은 암자로 올라갔다. 이곳은 사람들이 거의 없고 조용해서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이곳에서도 삼배를 올리고 나한님들을 바라보며 생김새들을 이야기했다. 나한남들은 부처님의 밑에서 공부하는 제자들이라고 하셨는데 그 모습들이 하나도 같은 모습이 없다. 어떤 제자는 조는 듯 보이기도 하고, 어떤 제자는 눈이 똘똘하게 보인다. 마치 학창 시절 수업시간 모습과 흡사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입구에서 초하나를 산 우리는 조용한 외부 공간에 불을 켜고 내려왔다.
제주에는 타로카페가 별로 없다. 예전에 지인이 소개해준 곳이었는데 딸아이가 가보고 싶다고 해서 다음 행선지로 타로카페에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고 인테리어를 구경하다가 타로를 보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 내부가 넘 맘에 들었다. 나만의 글 쓰는 장소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의 타로 보는 모습을 옆에 앉아 보면서
'얘가 많이 힘들구나!,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순간 나의 무심함을 느끼기도 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하며 꽤 긴 시간을 그 공간에 있었던 것 같다.
그 공간에서 나온 우리는 달달한 티라미슈와 에그타르트를 주문했다. 음료와 함께 마시며 또다시 둘만의 이야기꽃이 활짝 피어났다. 그렇게 우린 또 하나의 둘만의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사실 오늘 모든 계산을 딸아이가 했다. 점심값이며, 초구입, 음료 계산까지... 참 감사하다. 부족한 엄마를 이제 자신이 챙기려는 깊은 마음이 전해져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자기가 벌고 있으니 자기가 계산하고 싶다며...
딸아이는 꿈이 확실하다. 초등학교 때 영화 '연가시'를 함께 보고 갖게 된 꿈. 지금도 진행 중인 꿈. 그래서 지금 힘든 일도 잘 이겨낼 것이라 엄마는 믿는다. 너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이제까지 보아온 너는 그랬으니까...
이제 딸아이가 엄마를 떠나 자신의 꿈을 향해 무소의 뿔처럼 씩씩하게 걸어 나가길 바랄 뿐이다.
사랑하는 딸아, 너에게 주어진 너만의 삶을 네가 바라는 색으로 풍성하게 물들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