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요즘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나도 그런 경험을 했으니까. 10여 년 전 헤어진 사람은 나를 이 세상에 연결시켜주신 나의 어머니였다. 그 이후로 항상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길을 걷다 문득 바람결에 찾아온다. 설거지를 하다 안부를 묻기도 한다. 그렇게 그때와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지만 남겨진 나는 그 시절 나로 고정되어 그와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을 볼 때는 눈빛으로 말을 한다. ‘보고 싶다’고..., 과거를 향한 시야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올 때는 온 세상이 서운한 마음으로 가득 차버리기도 한다. 친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누구나 견뎌내야 하는 그 시간들 속에 던져져 혼자 울부짖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 다가가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다. 그 시간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한 순간이므로, 그 누구도 방해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몰랐었다. 나도 보내보고서야 알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어머니가 아닌 배우자와의 이별은 어떨까?를 생각해 본다. 함께 한 시간이 25년이 되고 있다. 연애 시간까지 합하면 31년의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다. 원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동고동락한 사람과의 이별은 어떨까? 어머니와의 이별이 배우자가 옆에서 지켜줄 수 있어서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이란 외롭고 불완전한 동물이어서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하고픈, 동행하고픈 마음이 있다. 회자정리,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 속에서 분명 이별이라는 시간은 올 것이다. 예전 대구지하철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잊히지 않는 미담이 있다. 당시 모두 전화를 걸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아수라장이 된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수고했어, 내가 먼저 가 있을게.. 사랑해”라는 말을 전했다는 기사를 접했었다. 그 순간 머리를 한데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죽음의 앞에서 저렇게 평온한 모습의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하며 자신의 상황을 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경외감마저 들었었다. 그 이후로 나도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살고자 노력한 것 같다. 어느 순간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했을 때 후회 없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묵히지 않고 마음이 생겨날 때 바로바로 전하려고 애썼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맞이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세상에 감사할 일들이 많아졌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매일 떠오르는 햇살도, 반복되는 일상도 나에겐 똑같은 하루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 그것은 탄생과 죽음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음이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메멘토 모리, 항상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피어났다. 소유도 물질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 순간 나 자신이 깨어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삶의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으며 나의 마지막 순간을 항상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독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잊힐 만큼 또렷하다. 입관식 날 덩그러니 누워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순간, 내가 그분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왔음을 처음으로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 이유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 함을 말이다. 인간은 그래서 어리석은 중생인가 보다.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신은 깨달음마저 고통을 통해 주신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후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행과 불행이 반복하며 찾아오는 우리 삶 속에 그때마다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음을 안다. 세상엔 어떤 경험도 무의미한 경험이 없으므로 그때부터 지혜로운 사람이 나의 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