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꽃

-서연 꽃과 선생님 꽃

by Sapiens



서연이 꽃과 선생님 꽃은 보라색을 띠고 있다. 기다란 꽃잎이 노란 암술과 수술을 둘러싸고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마치 술을 보호라도 하듯이 가녀린 잎들이 보디가드처럼 지키고 있다. 암술의 모양이 나팔 모양의 톱니처럼 생겼다. 노란색과 보라색이 대비되지만 잘 어우러져 눈에 띄는 한송이 꽃으로 존재하고 서 있다.

어느 날이었다. 서연이 꽃과 선생님 꽃은 평소처럼 싱글벙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날씨도 화창했기 때문에 이야기꽃은 활짝 피어났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앉아있는 곳에 어떤 남녀 한 쌍이 다가오더니 ‘어머나. 예뻐라~’하면서 가까이 입맞춤을 하며 카메라로 연신 우리를 찍는다.

사실 우리는 이야기를 더 이상 할 수도 없었고, 카메라 셔터 소리에 시끄러워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아뿔싸! 그런데 예쁘게 생긴 여자가 우리를 안으려고 다가오는 듯하더니 갑자기 팔을 뻗어 선생님 꽃을 ‘툭’ 꺾어버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코 쪽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서연이 꽃은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연이 꽃은 선생님 꽃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이 꽃은 생활하는데 의욕이 없었다.

선생님 꽃이 꺾여 산산이 무너진 날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웃음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바람소리에 나뭇잎들이 속삭이는 소리에도 서연이 꽃은 움찔움찔했다.

그런 시간도 잠시, 그날도 누군가 다가왔다. 농장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우리는 이사를 가는 것처럼 종이에 돌돌 말려 어디론가 실려갔다. 너무나 캄캄해서 도무지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착했는지 차에서 내려지는 우리는 사람들에 의해 한 장소에 모였다. 그제야 우리는 눈을 뜨고 바깥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동하는 동안 신문지 속에서 기름 냄새를 맡으며 숨을 쉬기 힘들었다. 신문지가 찢어질 때마다 들어오는 빛이 세상을 밝혀주는 듯했다.

그런데 바깥세상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친구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 무리 중 하나일 뿐이었다. 외롭고 두려웠지만 그래도 숨을 쉴 수 있도록 새 주인이 우리들을 옮겨 주었다. 유리로 된 진열장과 비슷하게 생긴 곳으로 우리를 밀어 넣었다. 우리는 상품이 되어 진열되고 있었다. 새 주인의 모습은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를 만지는 손길이 조심스러웠고 거칠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 우리는 잘 먹고 잘 쉬면서 혈색이 점점 화려하게 피어났다. 그렇게 적응하며 여러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친구들이 하나 둘 색깔 종이에 감싸고 비닐에 둘러싸여 예쁘게 치장을 하더니 다시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유심이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주인은 우리를 분리한다. 그리곤 여러 친구들을 묶어 화려한 종이로 다시 감싸고는 예쁜 리본까지 달아준다. 최고의 대접을 받는 듯한 기분이 싫지 않은 듯 보인다. 그리곤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의 두 손에 안겨 함께 사라진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매 순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나를 선택하고 어떤 곳으로 가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친구들도 몇 남지 않았다.

그날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우리는 어떻게 될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 여리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나의 시선은 그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직감이랄까? 나는 숨을 죽여 가만히 있었다. 아주머니는 진열장으로 다가오더니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나를 지목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포장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고, 주인은 나를 하얀 종이에 둘둘 말아 아주머니에게 건네졌다. 그렇게 나의 운명은 또 다른 누군가의 손길에 건네졌다.

기운이 빠진 채 눈을 감고 한 참을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의 미래를 알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파트 문이 열렸고 현관으로 들어서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순간 깜짝 놀랐다. 집안에는 친구들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집안 가득 풍기는 향기로움에 화들짝 거릴 수밖에 없었다. 거실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온 친구들은 너무나 활기차 보였다. 나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주인에 의해 탁자 위에 놓였고 둘둘 말린 종이가 펼쳐졌다. 그리곤 주인은 나를 세심하게 다듬으며 손질을 하고는 친구들과 함께 지낼 수 있으면서도 나만의 공간 안에 넣어주었다. 난 내가 담긴 화병이 참 마음에 들었다. 순백색의 가운을 입은 신부처럼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친구들이 환영의 의미로 미소를 지어주었다. 난 너무나 감사했다. 사실 나의 미래가 이렇게 펼쳐질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주인은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를 소중히 다루어 준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너는 선택받은 거야!”라며 노란 꽃잎이 입을 벌리며 전해주었다.

나는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이제까지 이런 곳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바로 그때

“얘들아, 너희들에게 맛있는 것들을 나눠줄게”

라고 말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주인아주머니가 주는 영양제와 맛난 음식들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 너무나 행복한 모습이다.

식사를 마친 친구들은 아주머니와 익숙한 듯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 보인다. 나는 아직 적응이 안 되어 얼떨떨했지만 나도 모르게 내심 마음의 안정을 찾는 듯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윽고 집안에는 꽃향기와 음악의 향기가 버무려지며 집안 가득 행복한 공기가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우리와 교감을 하고 있었다. 매일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물을 주며,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이렇게 함께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정말 절망이라고 생각한 순간, 나는 행복을 맛보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과도 함께 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 비록 선생님 꽃과 안타까운 이별을 했지만, 또 다른 만남을 통해 나의 생은 진행되고 있었다.

세상에는 우리와 같은 존재를 좋아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한 행위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치를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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