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른이 되어버린 소녀

by Sapiens

*어른이 되어버린 소녀

고영희


2012년 7월 봄햇살 같은 따스한 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이승에서의 길을 축복이라도 해 주듯…, 따스한 햇살의 숨결을 느끼며 그녀는 하얀 운구차 맨 앞좌석에 애증과도 같은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엄숙하게 앉아 있었다.


도로 위 풍경은 여느날 처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이다. 거리엔 매일 반복되는 똑 같은 일상의 아침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다른 공간,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천천히 달리는 영구차는 마치 그동안 같이 숨쉬고 살았던 세상의 모든 존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걸어가는 듯 했다. 순간 그녀는 영정사진 속 어머니와 동화됨을 느끼더니 양지공원을 향해 가는 4차선 도로를 따라 어머니의 팔십생이 오버랩이 되고 있었다. 커다란 영구차 앞 유리는 하나의 스크린이 되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삶의 파노라마가 그녀의 시야 속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2남 6녀의 자녀를 낳아 기르셨고 마흔 두살에 막내인 그녀를 낳으셨다. 그녀가 초등학교 입학 전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린 그녀는 어머니와 가장 지근거리에서 함께 생활을 하였다. 그 때문이였는지 어머니에 대한 정이 남달랐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아플 때면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그녀가 보호자가 되어야 했으며 때론 집안의 제사상 차리는 일들을 돕고 설겆이와 청소 및 집안의 소소한 일들인 철따라 밀가루 풀을 쑤어 문풍지 새로 바르기. 철제대문에 녹을 긁어낸 후 진동하는 신나냄새를 맡으며 초록색 페인트로 철제대문 칠하기, 여름철 밤이면 끊어짐이 잦은 두꺼비집을 열어 젖히고는 감전에 대한 공포와 싸우며 온갖 겁에 질린 채 의자 위에 올라가서 까치발을 하고는 도라이버로 돌려가며 상하에 끊어진 휴즈를 풀어 새 휴즈를 정확히 끼우고 다시 고정시키는 전기휴즈 갈아끼우기, 소변을 모아 둔 항아리에서 지린내가 진동하는 숙성된 오줌을 폐 페인트통에 길어 양 손에 하나씩 들고 동네 우영밭까지 나르기, 빛 바랜 파란 스레트 지붕에 올라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며 파란색 페인트로 지붕 칠하기, 등등의 일상의 일들을 어머니와 같이 하며 어린 그녀는 어머니 삶의 관찰자가 되었던 것 같다.


그녀의 유년시절은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인 한 여성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생활 속에서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부유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언니, 오빠들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 대학을 육지로 가는 것을 택했고, 홀로 8남매를 키우는 어머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어린 그녀로서는 어머니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은 더욱 깊어졌던 것 같다. 삶이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어떨 때는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 싫었고 ‘왜 저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고뇌 속에서 그녀 자신을 힘들게 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린 그녀는 한번도 어머니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누구 탓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옷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음식투정을 하거나 흔한 어리광조차 부리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라고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 항상 어머니라고 불렀다. 왜 그랬는지는 그녀 자신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일찍 철이 들어버렸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장학금을 받아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전축을 선물하기도 했었다. 어린 소녀의 무의식 중에 혼자가 된 나이 많은 어머니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여성에 대한 연민이였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소녀는 자신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삶에 개입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 어린 그녀의 촉수는 매순간 어머니를 향해 있었던 것 같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이러한 일들을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하는 몫이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의 불평도 하지 않았고 불만도 없었던것 같다. 아니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인것 같다. 그녀의 유년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묵직했고 안타깝게도 아이다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시간이 흘러 언니, 오빠들이 한 분씩 출가를 하기 시작했고, 그녀 또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그녀는 무의식 속에 결혼을 통해 온전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어디에도 구속하지 않는 영혼의 자유를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연애를 할 때는 물론 결혼을 하고 나서도 혼자 있는 어머니는 밥은 잘 챙겨 먹으셨는지, 어디 아프진 않으신지, 먹을 반찬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모든게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스스로 옥죄는 사슬에 묶여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걱정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디를 가든 늘 어머니의 존재는 그녀의 의식속에 그림자처럼 공존했다. 그녀는 그렇게 한 순간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도 아닌 올가미에 갖혀버린 덫과 같은 것이었다.



#짙은 이별의 선물이라는 글의 서두부분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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