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뿐인 인생 죽도록 사랑하리
*죽도록 사랑하리
직사각형의 방안에는 짙은 갈색 앉은뱅이책상이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반질반질 세월의 자국으로 부드러운 촉감이 정갈하다.
소녀가 아빠 다리를 하고 책상에 앉으면 두 다리는 책상 안으로 쏙 들어간다. 두 다리가 들어간 아궁이 같이 생긴 공간 양쪽 옆에는 두 단의 서랍이 반듯하게 위치해 있다. 서랍의 손잡이는 금빛인지 은빛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책상의 품위를 살려주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어서 훨씬 고급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그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소녀의 의식 속에는 항상 우울한 감정이 찾아온다.
소녀는 웃는 경우가 거의 없다. 웃을 일도 없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웃는 일이 있어도 소녀에게는 전혀 웃기지가 않았다. 마치 웃음이란 게 처음부터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처럼...
초등학교 3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학교를 마치고 책상 앞에서 숙제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책상 앞에는 문풍지 창문이 있고 그 좌측 벽면에는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액자이다. 그날따라 소녀는 액자 속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림 속 강물 위에는 물풀들이 있고 나룻배 한 척이 있다. 그리고 한쪽에는 시 한 편이 쓰여 있다. 시의 제목은 ‘뭇별’이라고 쓰여 있다. 어린 소녀는 뭇별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액자 속 그림 속에 빠져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강물 위 나룻배 한 척이 마치 자신과 같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어린 소녀는 방바닥에 덩그러니 누워 팔을 베고 액자 속 그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참을 그렇게 누워있다. 그림 속에서 만나는 사물들과 이야기를 하며 상상하는 일은 싫지 않은 모양이다. 어린 소녀는 뭇별의 시를 읽고 또 읽는다. 무슨 의미인지 알쏭달쏭 하지만 시를 읽는 게 싫지 않았다. 시 속에서 풍겨 나는 분위기가 그림 속에서 대신 이야기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속에는 모든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사실 그 액자의 그림은 셋째 언니가 그린 것이다. 언니는 그림에 소질이 있는 듯하다. 어느 날, 매일 보던 액자 옆에 새로운 그림이 걸려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안고 있는 그림이다. 분위기로 봐서는 외국 사람인 것 같다. 그림 위쪽에는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언니가 영화 포스터를 따라 그렸다고 말해 주었다.
어린 소녀는 틈날 때마다 그림을 감상했다. 그림 아래에는 한 문장이 쓰여 있다. 그 문장에서 소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죽도록 사랑하리’...
사랑...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림 속 두 남녀의 모습이 절절해 보인다. 매일매일 그림을 보다 보니 남자가 입은 양복과 여자의 드레스며, 그들의 간절한 얼굴 표정, 손짓 하나하나까지 강렬하고 섬세하게 표현해있다. 죽도록 사랑하리... 사랑하지 못할 무슨 사연이라도 있을까? 어린 소녀는 그림 속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시간 속 여행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죽도록 사랑하리’라는 문장은 소녀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렸다. 소녀가 성장하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영화를 알게 되었고 그때의 장면을 떠 올리며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정확한 문장은
‘단 한 번뿐인 인생 죽도록 사랑하리’
였다. 그때부터 소녀는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리라 다짐했다. 언젠가 소녀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면 단 한 번뿐인 인생이므로 죽도록 사랑하며 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