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는 매직
관점의 전환
우리는 어떤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까?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분명 오늘의 아침은 어제와 다른 아침의 순간이 펼쳐지고 있다.
머리카락이 자라듯, 피부의 주름도, 눈가의 검버섯들도, 손톱의 크기도. 육체 속 수많은 기관들도 모두 조금씩 노화되며 성장하고 있다.
그 많은 성장 속에서 나 자신의 생각은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요히 의자에 앉아 자신과의 내면의 대화를 시도해본다.
식탁이 있는 부엌의 공간 속에 머물며 어제와 다른 바람의 향기를 맡고 있다. 어제와 다른 자신과 마주하고 있음을 느껴본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피부로 느껴지지 못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제와 다른 모습과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느낄 여유도 없이 우리는 행복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지만 매일 불행 속에 존재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어제와 다른 아침을 느끼며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즉 관점을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은 다르게 펼쳐진다고 생각한다.
관점이 변하는 순간 사랑의 의미도, 타인의 모습도, 주위의 사물들도, 자신의 존재도... 삶의 철학 또한 바뀌면서 전혀 다른 ‘또 다른 자신’으로 변화되어 새로운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그 속에는 항상 사랑과 행복과 감사함이 넘쳐난다. 가진 게 없어도 마음만은 풍성한 진정한 내면의 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너그러워지고, 때론 유머러스해지고,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고, 마음의 고민들이 사라지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
메멘토 모리,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세워진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모두 때가 되면 사라지듯, 우리 또한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주어진 우리 삶의 결과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내면의 부자가 되기 위해선 우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 속 자아와 대화를 하며 올라오는 화를 다독여주고, 마음의 슬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점들을 방치하면서 자신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 어리석은 행위이다. 이렇게 의식이 깨어있지 않으면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는 눈이 점점 작아진다. 결국 내 시야가 아닌 타인의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가치 있는 삶은 살고 싶어 한다.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타인은 ‘나 밖의 또 다른 나’이므로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삶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내가 바로 설 수 있을 때, 내가 행복으로 충만한 삶을 살 때 비로소 주변의 타인들이 보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타인은 가족이라 생각한다. 가족을 사랑한다면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 일이 먼저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관점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