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삶
짙은 이별의 선물
2012년 7월 봄햇살 같은 따스한 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이승에서의 길을 축복이라도 해 주듯…, 따스한 햇살의 숨결을 느끼며 그녀는 하얀 운구차 맨 앞좌석에 애증과도 같은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엄숙하게 앉아 있었다.
도로 위 풍경은 여느 날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이다. 거리엔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의 아침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다른 공간,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천천히 달리는 영구차는 마치 그동안 같이 숨 쉬고 살았던 세상의 모든 존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걸어가는 듯했다. 순간 그녀는 영정사진 속 어머니와 동화됨을 느끼더니 양지공원을 향해 가는 4차선 도로를 따라 어머니의 팔십생이 오버랩이 되고 있었다. 커다란 영구차 앞 유리는 하나의 스크린이 되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삶의 파노라마가 그녀의 시야 속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2남 6녀의 자녀를 낳아 기르셨고 마흔두 살에 막내인 그녀를 낳으셨다. 그녀가 국민학교 입학 전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린 그녀는 어머니와 가장 지근거리에서 함께 생활을 하였다. 그 때문이었는지 어머니에 대한 정이 남달랐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아플 때면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그녀가 보호자가 되어야 했으며, 때론 집안의 제사상 차리는 일들을 돕거나, 설거지와 청소 및 집안의 소소한 일들 그리 고철 따라 밀가루 풀을 쑤어 문풍지 새로 바르기. 철제 대문에 녹을 긁어내고 진동하는 신나냄새를 맡으며 초록색 페인트로 대문 칠하기, 여름철 밤이면 끊어짐이 잦은 두꺼비집을 열어젖히고는 감전에 대한 공포와 싸우며 온갖 겁에 질린 채 의자 위에 올라가서 까치발을 하고는 드라이버로 돌려가며 상하에 끊어진 휴즈를 풀어 새 휴즈를 정확히 끼우고 다시 고정시키는 전기 휴즈 갈아 끼우기, 소변을 모아 둔 항아리에서 지린내가 진동하는 숙성된 오줌을 폐 페인트통에 길어 양 손에 하나씩 들고 동네 우영밭까지 나르기, 빛바랜 파란 스레트 지붕에 올라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며 파란색 페인트로 지붕 칠하기, 등등의 일상의 일들을 같이 하며 어린 그녀는 어머니 삶의 관찰자가 되었던 것 같다.
그녀의 유년시절은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인 한 여성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생활 속에서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부유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언니, 오빠들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 대학을 육지로 가는 것을 택했고, 홀로 8남매를 키우는 어머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어린 그녀로서는 어머니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은 더욱 깊어졌던 것 같다. 삶이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어떨 때는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 싫었고 ‘왜 저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뇌 속에서 자신을 힘들게 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린 그녀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누구 탓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옷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음식 투정을 하거나 흔한 어리광조차 부리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라고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 항상 어머니라고 불렀다. 왜 그랬는지는 그녀 자신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일찍 철이 들어버렸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장학금을 받아 어머니가 좋아하는 전축을 선물하기도 했었다. 어린 소녀의 무의식 중 혼자가 된 나이 많은 어머니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한 여성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소녀는 자신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삶에 개입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 어린 그녀의 촉수는 매 순간 어머니를 향해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것들이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하는 몫이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의 불평도 하지 않았고 불만도 없었다. 아니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인 것 같다. 그녀의 유년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묵직했고 안타깝게도 아이다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시간이 흘러 언니, 오빠들이 한 분씩 출가를 하기 시작했고, 그녀 또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그녀는 무의식 속에 결혼을 통해 온전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어디에도 구속하지 않는 영혼의 자유를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연애를 할 때는 물론 결혼을 하고 나서도 혼자 있는 어머니는 밥은 잘 챙겨 먹으셨는지, 어디 아프진 않으신지, 먹을 반찬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모든 게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스스로 옥죄는 사슬에 묶여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걱정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디를 가든 늘 어머니의 존재는 그녀의 의식 속에 그림자처럼 공존했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도 형제들은 너무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집안 상황에 대한 생각도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이들을 출산하고 육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아이의 기저귀를 갈면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무심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똘똘한 눈으로 그녀를 향해 발버둥 치며 누워있는 자신의 아이를 보는 순간,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맞이할 때의 인간들의 모습이 오버랩이 되었다. 사지를 자유롭게 통제할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갓난아이의 상황이, 마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늙은 노인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 그러나 갓난아이들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박수갈채 속에서 태어나고, 그런 아이의 똥, 오줌 기저귀를 갈아주면서도 행복해 하지만, 늙어서 탱탱한 피부가 쭈굴쭈굴해지고 검버섯이 피어올라 거칠어지고 육체에서 지린내가 나고 거동이 어려워지게 되면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한 채 골칫덩어리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그녀에겐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고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을 나름의 방식대로 선택하고 해석하며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며 살아갔던 것 같다.
때로는 가족 중 누군가 집을 사면 집들이에 참석해 축하해 주었으며, 조카들이 하나씩 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형제들도 중년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형제 중 누군가는 잘 나가던 사업이 기울어지기도 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녀의 형제들은 각자의 삶이 주는 무게들을 짊어진 채 평범한 일상들을 보내면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 부모의 배속에서 턔어난 형제들이지만 서로 다른 삶의 운명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누구는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누구는 형제들과 비교하기도 하며 어릴 적 순수한 우애에서 벗어나 서로 멀어져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어진 각자의 삶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주말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에 가려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피곤하다면서 안 가신다고 하셨다. 당시 그녀의 아이들은 어려서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고 자신까지 몸을 씻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 어머니 목소리가 힘없이 들렸기 때문에 그녀는 알겠다고 하고는 아이들과 함께 목욕탕으로 갔다. 그녀는 목욕을 하면서도 어머니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목욕 후 어머니 집에 들르려고 다시 전화를 했다. 그런데 통화 중이었고 그날따라 너무 피곤한 그녀는 주차장을 계속 맴돌면서 전화를 시도하다 결국 그냥 집으로 와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전화벨이 울리고 잠에선 깬 그녀는 놀라서 어리둥절했다. 그녀가 전화를 했던 그 시간이 마침 어머니가 쓰러진 상태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스스로 자책을 하고 있었다. 쓰러진 상태로 수화기는 내려져 있어서 통화 중 신호가 들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니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서 한 쪽몸에 마비가 왔고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여느 때면 항상 무슨 일이 있나 해서 꼭 올라가 보는 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너무 피곤했고 그냥 집으로 향한 자신이 후회되었다.
그 후로 어머니는 병원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형제들끼리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였을까? 사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던가…. 생각해보면 그녀는 어머니를 짝사랑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어도 그녀에게는 어머니가 일 순위였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쓰러지신 순간부터 돌아가시기까지 4여 년이 흐르는 동안 어머니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형제들 모두 자신의 생활이 힘들다는 이유로 돌봐 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그녀 혼자 동분서주하며 어머니를 보살펴야 했으며, 2~3개월에 한 번씩 입퇴원을 반복해야 했고, 수술이라든지 의논할 일들이 생겼을 때는 그녀에게는 처음 겪는 일들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너무도 막막하고 버거웠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형제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가 자리하게 되었고 오히려 언니, 오빠에게 말을 하면 돌아오는 것은 마음의 상처뿐이었다.
그녀도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있었지만 이러한 상황들이 그녀 자신에게 ‘부모와 자식이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그 당시에는 그녀는 ‘만약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온전히 어머니에게 올인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마음도 힘들고 여력이 없어서 그녀는 직장을 그만 접어야 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일은 벌어진 일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그 벌어진 일로 인한 주변 상황들이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정신을 놓아선 안되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방법을 몰랐다. 닥치는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물어도 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한 번은 택시를 탔는데 나이 드신 기사분이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의해 보기도 했다. 당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녀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을 것이다. 간병인 등 주변 어른들은 오히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용해 먹으려는 심산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 어른들은 많아도 상의할 어른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암흑 속에 갇혀버린 아이처럼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방하’… 내가 너무 힘들고 버거울 때 처음 도서관에서 집어 든 책이었다. 놓을 방, 아래 하… ‘아래로 내려놓으라…’ 그 당시 그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순간의 끌림은 있었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내려놓아야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벌어진 혼돈 상황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숨을 쉬기 위해 그 날부터 닥치는 대로 관련 서적과 불교서적을 찾으며 읽고 또 읽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었다.
언니, 오빠들의 행동에 대해 그녀는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동안 어머니의 삶을 감히 그녀 자신이 짊어지려고 했다는 것임을, 어머니는 당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사신 것이고 감히 자식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어머니의 삶에 참견을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어머니의 노후의 모습 또한 당신이 살아온 당신 삶의 결과물임을,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를 위한다는 말로 그녀가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어머니의 상황을 자신이 가슴 아파할 것이 아니라 그녀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실들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며 마음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머니를 찾아뵙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그 모든 것들이 누구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들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는 조금은 편하게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어머니를 일주일에 한 번 목욕을 시켜드리고, 좋아하는 음식을 사다 먹여드리고, 아이들과 가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생일 축하 노래 불러드리며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다 어머니를 찾아 병원으로 간 어느 날, 어머니는 병실에 없었다. 어머니는 퇴원했으며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고 하셨다.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머니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했고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옮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양원으로 찾아가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요양병원이 비용이 더 저렴하다는 이유에서 옮겼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얼굴도 보이지 않던 언니, 오빠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라 충격이 너무나 컸다. 사실 비용은 모두 어머니 돈으로 내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요양 병원으로 옮기고 어머니를 뵈러 갔을 때 어머니는 그곳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옮기고 나서 한 달도 안되어서 병원 응급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응급실에서 어머니를 뵈었을 때 억장이 무너졌다. 다시 어머니는 중환자실과 병실을 두 차례 오가며 수술도 하시고 두 번의 고비를 넘기셨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병원에 찾아오지 않았다. 수술할 때도 그녀 혼자만이 수술실 대기실에서 마음을 졸이며 기다려야 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어머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의식이 찾아왔을 때 어머니는 그녀를 향해 발버둥을 치셨다. ‘나 좀 제발 죽여달라’ 하시며 그녀를 향해 소리 지르셨다. 그녀는 모든 상황이 버거웠다. 그녀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죽여달라는 고통스러운 어머니의 울부짖음을 보며 그녀는 순간 ‘어머니와 나는 어떤 관계인 것일까... 우린 어떤 사연으로 인연이 되어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면회시간이 끝나고 발길을 돌리면서 하염없이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이후 점점 호전된 어머니는 다시 병실로 옮겨졌다. 뇌출혈의 후유증으로 치매까지 오는 상황이었기에 앞이 막막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지셨고 앙상한 뼈만 남기며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그녀는 홍삼도 사다 먹이고 비타민도 사다가 먹여 보았다. 전혀 효과가 없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사람이 죽기 전에는 살이 계속 빠진다고 한다. 앙상한 뼈가 보일 때까지...
그 후 다시 찾아갔던 날 어머니는 컨디션이 너무도 좋았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했더니 참외가 먹고 싶다고 하셨다. 다음에 올 때 사 온다고 하고는 그날은 준비하고 온 것들을 드렸다. 그녀는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다음날 농협에 가서 제일 큰 참외를 사고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마침 주무시고 계셔서 간병인에게 어머니가 잠에서 깨시며 참외를 깎아서 먹여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날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화였다. 그녀는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그녀를 본 간병인이 어머니가 참외는 하나도 못 드셨다고 하셨다. 아침부터 이상이 와서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어머니께서 드시고 싶던 참외는 결국 드시지 못했다. 간병인들끼리 나눠드셨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그녀는 의사 선생님 방을 찾았다. 그녀를 보신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번에는 힘들 것 같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하셨다. 가족에게 모두 알리라고 하시면서... 그녀는 아무 의식 없이 문을 다고 나왔다. 무언의 인정 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번에는 무의식 중에서도 어려울 것이라는 예감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실 어머니는 장례비용과 49제 비용으로 그녀에게 2천만 원을 맡기셨다. 돈을 맡길 당시 그녀는
‘어머니는 왜 사후의 일까지 신경을 쓰실까? 그 돈으로 조금이라도 편하게 쓰시다 가시지…’
짜증도 나고 화도 났었다.
당신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도 못하고 형제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간병비며 치료비 또한 어머니께서 모두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 8남매들은 어떠한 경제적인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어머니께서 운명하시자 수술하실 때나 수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을 때도 볼 수 없었던 가족들이 모두 참석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 덕분에 중환자실에서 그녀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중환자실에 달려갔을 때 마주한 그 모습을 처연히 바라보면서 그녀는 어떤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보고 싶어 했던 다른 자식들과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헛웃음만을 띄우며 그 자리에 멀뚱이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어머니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상하리 만큼 너무도 차분했고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사실, 어머니의 죽음과 맞이 할 여유조차 없었다. 마지막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평생 다니신 절의 스님과 의논해 어머니를 병원 중환자실에서 장례식장으로 모셔왔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출장 택일을 전화로 예약하고 입관절차 및 망자에게 입힐 수의며 음식 준비 등 그녀 생애 처음 사람이 살면서 겪는 네 가지 예식인 관혼상제 중 하나인 상례를 치러 내야 했다.
어머니 생전에 자식과 사위들의 체격에 맞춰 한벌 한벌 정성껏 포장한 열여섯 복의 상복이 담긴 보타리와 마주했을 때는 마음 한편이 먹먹하기도 했다. 그녀는 노란색 삼베로 지어진 상복으로 갈아입으면서 다시 한번 어머니의 정성 어린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가슴은 몹시 쓰라렸다.
가족들 모두 어머니께서 손수 준비해 둔 상복을 차려 입고 어머니를 모신 영정 사진 앞에 8남매 모두 한 줄로 서 있을 때였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스치는 또 하나의 생각에 그녀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식들이 망자 앞에 든든하게 서서 어머니 당신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어머니의 깊은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거구나, 이 모습이 살아생전 어머니가 원하던 장면이었구나!’
마지막 가시는 길은 외롭지 않게 자식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는 생각을 알아챘을 때 그녀는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한없이 작아짐을 느껴야 했다.
살아생전 많은 친구분들의 장례식에서 자식들끼리 다투거나 잡음 있는 여러 장례 모습들을 보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의 장례식을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런 깊은 뜻도 모른 채 그녀는 사후 일처리까지 신경 쓰신다며 얼마나 자신의 어머니를 책망했던가…. 그녀는 어머니의 혜안도 알지 못하면서 투덜대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입관을 하기 위한 입관식에 참관하는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 순간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엄숙하고 떨리는 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입관실에 들어갔을 때 커다란 직사각형 유리 너머 가로로 긴 차가운 철제 테이블 위에 하얀 수의를 입고 고운 자태로 누워 있는 어머니와 마주했다. 참으로 평온한 얼굴을 하고 누워있는 어머니의 옆모습은 망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워서 놀라웠다.
사실 어떤 분들은 입관식을 보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입관식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자식이라면 꼭 부모의 입관식에는 참여해 부모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저토록 평화롭게 누워 있을 수 있을까? 사십여 년 어머니를 보아왔지만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 어떤 고통도 없는 평온한 모습… 누구나 바라는 자신의 마지막 얼굴이 이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감히 죽어있는 영혼의 육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 일어나~”
라고 몸을 흔들어 깨우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았다.
‘정말 어머니가 운명하신 게 맞나?’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수의를 입고 혼자 덩그러니 누워 있는 한 인간의 모습과 마주한 순간, 마치 부처의 죽비를 맞는 듯 놀라운 깨달음에 그녀 자신은 너무도 숙연해졌다. 사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자기 육체의 주인이고 그녀 자신이 잘나서 지금의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으며 그러한 생각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자각에 너무도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아, 나는 저분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온 것이었구나! 내가 그냥 이 세상에 존재한 것이 아녔구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자신 존재의 뿌리인 저분의 감사함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위대하신 당신!! 그 가녀린 몸에서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주신 당신, 나의 어머니…”
그렇게 그녀가 부끄러운 눈망울로 무언의 대화를 하며 감사함을 느끼는 동안 어머니 주위를 돌며 언니, 오빠들은 마지막 인사의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그녀는 한 번만 안아보고 싶었다. 끌어안고 입맞춤을 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허락되지 않았고 어느새 어머니를 지나친 채 저 멀리 서 있게 되었다, 이윽고 어머니를 관 안으로 안치한 후 금강 다라니경으로 감쌌으며 마지막 관 뚜껑이 닫혔다. 그렇게 어머니는 관 속으로 영원히 봉인되었다. 그렇게 입관식은 끝이 났다.
이별의 순간은 참으로 짧았다. 하지만 그녀 자신에게 그 울림은 너무도 깊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시간은 7일 동안 이루어졌다. 그 시간이 한 사람이 세상에 와서 이승을 정리하고 떠나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둘만의 시간을 보낼 틈도 없이 손님들을 치르며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시신을 화장해야 하는 날은 어김없이 밝았다. 생전 어머니의 유언대로 시신을 화장하고 수목장을 거행하기로 했다. 지난밤, 어머니 영정사진은 그녀가 들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영정사진 속 어머니는 연분홍 살구빛 깨끼 한복을 입으셨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후덕한 자태로 너그러운 눈길을 품어내고 있었다. 영정사진 액자 테두리에는 분홍색 무늬가 둘러져 있어서 조금은 화려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 액자와 영정사진 또한 당신이 수차례 고민하며 손수 선택해 준비해 두신 것이다.
생전에 꼼꼼하시던 그런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녀는 영정사진을 가슴에 앉히고 두 손으로 꼭 안았다. 그녀 가슴속에 파묻힌 영정사진은 이미 그녀에게는 사진 그 이상의 존재였고, 어머니의 영혼 그 자체였다. 어머니와 그녀는 한 몸이 되어 장례식장에서 나와 운구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그녀의 귓가에 애절한 메아리가 들려왔다.
“K야, 절대 뒤로 돌아보지 마라.”
그녀가 7살 때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상여를 이끌고 많은 사람들과 걸어가시면서 집 앞으로 나온 어린 그녀를 향해 동구 밖에서 소리쳤었다. 그 당시 그녀는 어린 마음에 절대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어머니 외침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이 뇌리에 꽉 차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꾹꾹 참고 기다리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쯤이면 지나갔을 거라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뒤로 돌아보았었다. 아버지의 커다랗고 하얀 상여는 집 동구 밖 언덕길을 오르며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 편의 색 바랜 흑백사진처럼 그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버지와 그녀의 마지막 이별 모습으로 희미하게 자리하고 있는 유일한 기억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 어머니는 그녀가 어려서 아버지 가시는 길에 발이 안 떨어지신다고 생각하시고 어린 그녀에게 신신당부를 하셨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신이 홀로 자식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컸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당시 7살이었던 어린아이가 마흔두 살이 되어 뒤돌아보지 말라고 외치던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걸어가고 있었다. 당시 7살이었던 어린 소녀를 지켜냈듯이, 지금 그녀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돌아보는 순간 이승의 삶에 발이 떨어지지 않아 어머니가 힘들어할 것을 걱정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귓가에 맴돌던 메아리가 서서히 그치더니, 그토록 혼자된 어머니께서 지켜내어 선물한 40여 년의 삶을 걸어가고 있는 그녀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 눈 앞에 펼쳐진 어머니 삶의 파노라마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영구차 앞 유리 너머로 여전히 봄소풍이라도 가고 싶은 따스한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고 있었다. 영구차는 어느덧 양지공원 진입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양지공원에 도착 후 화장식을 거행하기 전 마지막 조촐한 제를 지낼 준비로 분주했다. 2평 남짓한 공간에 영정을 모시고 스님께서 망자의 영혼을 위해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녀는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지하를 오르내리면서 준비하느라 마지막으로 제에 합류한 탓에 영정사진과 바로 앞 가까이서 사진 속 어머니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신발을 벗고 영정을 향해 두 번 절을 올리고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주절거리고 있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웃으면서 가세요.. 걱정하지 마시고 가세요”
어머니에게 읊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사진 속 어머니는 분명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비벼보았다. 그리곤 또 한 번 눈을 비비고는 영정사진을 다시 쳐다보았다. 웃으면서도 슬픈 표정을 하시고 계신 어머니가 진정 그녀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고마웠다... K야.”
“어머니, 잘 가”
“어머니, 슬픈 표정 짓지 마... 웃으면서 가…”
그리고는 원래의 영정사진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순간 깜짝 놀랐지만 그녀는 너무도 어머니가 고마웠다. 임종하실 때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지막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가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너무도 감사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 잘 가...”
이윽고 귓가에 들리는 스님의 목탁소리는 그녀를 현실의 세계로 인도했다. 불경이 끝나고, 화장터로 관이 옮겨졌다.
그동안 유족들이 유리관 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맨 앞자리에 서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머니의 또 다른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신이건 아니건 그것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당신이 간절히 원했으므로 그녀는 행할 뿐이었다. 오로지 당신을 위해….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갈 때 모든 영혼이 놀란다며 자신의 관이 들어갈 때 반드시 그녀에게 외쳐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녀는 큰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불 들어감 수다. 놀라지 맙써”
“어머니, 불 들어감 수다. 놀라지 맙써”
“어머니, 불 들어감 수다. 놀라지 맙써”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3번을 외치는 사이에 어머니의 시신을 넣은 관은 그녀의 시야에서 멀어지면서 서서히 문이 닫혔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사각 모양의 창문이 열리더니 어머니의 대퇴골임을 확인하라 하신다. 그러면서 내민 손바닥 위에는 어머니의 뼈 한 조각이 앙상하게 누워있었다. 그녀는 확인이 아니라 처음으로 어머니의 육체 한 조각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그저 놀란 상태로 멍하니 바라보며 ‘네...’라는 말과 동시에 창문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어머니의 육체의 확인이 아니라 처음으로 보는 어머니의 마지막 육체와의 조우였다.
문이 닫히고 어머니의 대퇴골을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줌의 재로 변한 어머니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동안 늙은 육신을 씻기기 위해 그녀는 어머니를 안으려고 해도 너무 무거워 남편의 도움을 받았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나 가벼워 혹시나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감싸 가슴 품 안에 안아 들어야 했다.
하얀 항아리에 담긴 어머니의 육신을 받아 드니 따뜻한 온기가 그녀의 두 손바닥을 통해 가슴까지 전해진다. 어머니의 마지막 온기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항아리를 내려놓기가 싫어졌다. 그 온기는 가슴으로 점점 전해져 내 온몸으로 각인되는 듯했다. 하지만 현실의 슬픈 이별의 통증과 함께 인간 육체의 허망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정말 우리는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한 없이 가벼운 하얀 유골함을 안고 우리는 다시 영구차에 올랐다. 영구차는 다시 어머니가 평생 다니시던 절인 *** 광양지부로 향했다. 그곳에 어머니를 하룻밤 모셨다.
다음날 새벽... 우린 어머니의 유골함을 모시고 어두운 새벽 공기를 뚫으며 어머니께서 원하셨던 장소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때는 조금씩 어둠이 흩어지고 있었다. 산이라 그런지 여름 문턱이지만 새벽 공기가 차고 코끝이 시렸다. 그곳은 아직 어둠이 깔려있어서인지 적막했다. 그 적막을 깨는 것은 다름 아닌 까마귀들뿐이었다. 우리 모두 비장한 모습을 짓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마지막 의식을 준비했다.
스님께서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읊기 시작했다. 적막함 속에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의 진동에 불경 소리가 더해지면서 너무도 경건한 의식 속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제야 침묵이 어둠을 깨고 서서히 산자의 삶의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순서대로 나무 주위를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뿌리인 어머니 육체의 조각들을 뿌리기 시작했다. 육체의 가루들은 바람에 흩날리며 공기 속에서 춤을 추고는 가볍게 흙 위에 안착하며 뿌려졌다. 한 명씩 그렇게 나무 주위를 돌며 어머니와 마지막 대화를 했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검은 까마귀들이 떼 지어 날아와 ‘까아악 까아악’ 소리 내며 불경 소리 속에 흡수되어 함께 장례식에 동참해주었다. 찰나적 순간 그렇게 어머니는 한 줌의 재도 남김없이 뿌려지면서 흩어져 사라졌다. 그렇게 어머니는 우리와의 인연의 끈을 끊어 내셨다. 그 순간 그녀는 어머니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이 들였다. 스님의 목탁소리와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살아생전 불심이 강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육체를 자연의 자양분으로 마지막까지 복을 짓고 가는 것을 선택하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원래 오셨던 곳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삶과 죽음의 과정은 그녀에게 인간의 본질에 대한 사고의 깊이가 깊어지는 특별한 계기가 되어 주었으며, 진정한 그녀 자신을 재탄생시켜 주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세상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녀에게 많은 정신적인 가치를 선물해 주셨고, 그녀를 성장시켜 주셨으며 앞으로의 삶의 방향까지 제시해주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자아에 갇혀 자신의 시각대로만 바라보며 판단해온 것이었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짧은 삶을 살면서 우린 집착과 욕망을 뿌리치지 못하고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누구나 하는 말이 아닌 직접적으로 인간의 마지막 순간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어떤 삶을 선택하든 그 선택의 과보는 본인이 짓게 된다는 것, 그녀는 앞으로 어떠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삶의 진리 또한 찾을 수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는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그동안 흘러내리지 않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걸레질을 하다가도 많이 울었다. 장례식 때는 눈물도 안 나오더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7일에 한 번씩 절에서 제를 지내며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것이 인간의 욕심이라고 해도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영가를 위한 기도뿐이었다. 49일째 되는 날, 어머니와 그녀는 짙은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그동안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무의식 속에서 어머니를 책임져야 한다는 올가미에 갇혀 지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혹독한 아픔 뒤에 소중한 지혜를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전환은 그녀를 또 다른 삶의 세계 속으로 인도한다. 아파한 만큼 성숙한다고 했다. 우린 어리석은 중생이어서 아파하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통해 그녀는 자신에게 닥치는 시련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신은 시련을 자신이 선택한 소중한 사람에게만 주시고 그 시련을 이겨냈을 때 또 하나의 깨달음을 선물로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녀는 자신에게 닥치는 힘듦에 감사히 마주하려 한다. 그렇게 우린 아픔 속에서 성장하고 진정한 어른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한다, 나의 고통을…. 고통의 바다인 나의 삶을….
2019.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