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기억의 파편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그 아이는 집안 동구 밖 돌담에 기대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 같았지만 아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서러웠는지 두 팔로 얼굴에 감싼 채 흐느끼는 소리만이 고막을 울리고 있다,
“아야”
하얀 작은 강아지가 아이의 왼쪽 다리를 물고 유유히 사라지고 있었다.
신영의 기억 속 파편은 이 장면에서 멈춰있다. 신영의 왼쪽 다리에는 그날 물렸던 강아지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다. 그날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처럼 짙은 흔적이다.
신영은 무의식 중에 그날의 트라우마가 잠재되어 뿌리가 자라나듯 개에 대한 공포감이 커져만 갔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어디를 가든 신영은 개만 보이면 멈춰 섰다. 그리곤 개를 피해서 돌아가거나 멈칫거렸다. 어디를 가든 개를 마주한다는 것은 신영에게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 되어버렸다.
성인이 된 신영은 오히려 개를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무서움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이 존재하지만, 요즘처럼 애완견들을 기르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들이 더욱 늘고 있다.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개를 마주하는 일은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길거리에서는 잠시 멈춰 서서 뒤로 돌아가거나 인도를 내려 찻길로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하기도 힘든 경우 멈춰 서서 기다렸다 가면 그만이지만, 개가 두려운 신영에게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마트나 비행기 안에서 소리를 계속 지를 때면 공황이 있는 신영에게 정말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부터인가 소리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공황의 한 증상이다. 그렇게 개가 소리를 질러 시끄럽게 할 때면 신영은 약을 먹거나 잠들려고 노력한다.
예전에 공원에서 한 친구가 한 말에 신영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날도 수목원에서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애완견을 데리고 온 사람 때문에 신영은 또다시 긴장해야 했고 자리에서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개가 지나가고서야 친구와 신영은 가던 길을 걸어갔다.
“언니, 저 개는 기뻐서 꼬리를 흔들고 컹컹 소리를 낸 것뿐인데, 무슨 죄가 있어?”
“언니가 놀라는 모습에 오히려 저 개가 더 놀라지 않을까?”
‘…….’
신영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저 개는 무슨 죄가 있어서 그동안 나의 미움의 대상이 되었을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개는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었을 뿐이고, 컹컹거리며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일 뿐인데, 그제야 신영은 모든 것이 자신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릴 적 트라우마가 잠재되어 현실 속 자신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신영은 조금은 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 개가 두려운 존재가 아니고 신영 내면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