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간에 좇긴 채 허둥대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마치 정해진 초침과 시침 속에 갇혀 지내는 듯 보인다.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 무릎 위에 팔을 걸치고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은 흘러가게 되어있다. 그 흐름을 누구도 멈출 순 없다. 하지만 정해져 있는 시간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특권은 무시되고 지나가기 일수인 지금의 모습. 삶이 팍팍해서, 일상에 좇기다 보니, 경쟁에서 뒤처질까 봐, 누군가가 정한 성공이라는 기준을 향해 달려가다 보니, 나열할 수도 없는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주체적 삶을 살지 못한 채 노예의 삶을 자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지 못하고 있다.
새벽시간이다. 열어 둔 창문 사이로 지나가는 차들의 바퀴소리와 엔진 소리에서 그들의 노곤한 하루의 모습이 보인다. 이른 시간 어디를 저리도 빨리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어디까지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저들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그들도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일분일초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으며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빨리빨리 문화에서 벗어나 조금은 여유로운 삶을, 고요한 내면의 삶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길 바라본다. 한 동안 워라벨, 저녁이 있는 삶이 유행처럼 흘러가던 때가 있었다. 유행이 아닌 당연한 일상의 권리인데 유행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지 오래다. 바로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다.
하지만 행복은 헤매며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행복은 항상 우리 곁에서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단지, 그 속삭임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분명히 행복은 우리 곁에 있다. 단지 불행이라는 모습 뒤에 숨어 있기 때문에 행복을 찾아 헤매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행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 주변을 서성인다. 그리고 불행을 나에게 온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 불행은 신이 주신 깨달음이라는 선물의 모습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살다 보면, 다양한 일들을 경험한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상이 아니라 감정일 뿐이다. 감정을 추스르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만 나에게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좀 더 들여다보면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발생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로 인한 주변 상황이나 그 일로 인한 나의 감정이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 시간이 해결해 줄 때도 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방법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니 너무 지금의 매 순간에 얽매여서 현재의 순간을 흘러 보내지 말기를 바란다.
지금 이 순간, 노곤하고, 삶이 고통스러워도 잠시 마음에서 형성되는 감정을 내려놓아보자, 차 한잔을 하면서, 물 한잔을 마시면서, 거리를 걸으면서, 툇마루에 앉아서, 거리의 간판들을 바라보며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나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 쓰다듬어보자, 그래 잘하고 있어, 난 행복한 사람이야,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새날을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