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씀하시는데 난 신선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곤 기사님의 뒷모습에서 행위 하나하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의 뇌리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 는 옛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너무 근사한 사무실에 초대되어 편히 쉬는 느낌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사무실은 쾌적했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으신 기사님의 반듯함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잊히지 않는 모습으로 나에게 각인된 이벤트였다. 그 작은 공간이 자신의 사무실이라고 소개하시는 자신감. 그 너머에서 나는 그분의 인격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삶을 멋지고 당당하게 주체적으로 살아가시는 모습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끼게 했으며 손수 보여주신 기사분이었다.
그 이후 나의 직업관에 대해서도 조금은 영향을 주었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수긍하고 본받을 부분이 많았다. 단지 실천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의 차이임을 알게 되었다. 그 기사분은 손수 실천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직업을 갖는 것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소위 사회가 말하는 대기업이나 기득권들의 세상에 발을 들이고 있어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이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은 그 변화를 좇으며 살아가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현상들 앞에서 허우적거리며 사회인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청춘들이 많다.
좋은 대학을 나오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에만 몰두한 대가가 사뭇 냉정하고 매몰차게 청춘들을 사회의 음지로 내몰고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무엇이 변하고 있으며 누가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의 부재를 느끼곤 한다.
누구나 흔들리며 살아간다. 누구나 명확하지 않은 앞을 바라보며 살아내고 있다. 요즘 같은 변화무쌍한 시대에서 존재감을 느끼는 직업이란 무엇일까? 그 흐릿한 안갯속에서도 우리는 존재해 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 본다. 겉으로 보기에 근사하고 좋은 일만 좇는 것보다 누군가 해야만 하는 꼭 필요한 곳에 자신을 둘 수 있는 자신감, 용기, 그런 것들이 부재인 요즘이라는 사실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일등이 있으면 꼴찌도 있어야 한다. 왜 일등만을 좇는 것일까? 각 등급에 매겨지는 특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특권도 어떤 측면에서는 정당한 대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행복을 좇는 삶이 아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라본다. 오늘 이 순간, 난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