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실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약사님을 불렀다. 이윽고 직원 한 명이 나왔다. 점심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처방전을 내밀었다.
대기실 의자로 가서 앉았다. 11월의 겨울 문턱이지만 햇살이 비추는 낮, 나는 걸어서인지 더운 기운이 느껴졌다. 잠시 의자에 앉아 있기가 힘들기 시작한다. 식은땀이 이마에 맺히기 시작한다. 속이 메스껍다. 쓰러질 듯 어지러웠다. 어쩔 수 없이 줄지어 앉아 있는 의자들 위에 다리를 올리고 누웠다. 대기실 안에는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다. 더이상 사람들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점심시간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조제실에서 약을 포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공황이라는 친구가 찾아와 나를 만나고 있는 시간, 잠시 눈을 감고 고요 속에서 침잠하듯 심호흡을 한다. 온몸의 기운이 서서히 사라진다. 다시 기운이 찾아와 나를 일으켜 세워 줄 것임을 알기에 당황하지 않는다. 하필이면 공황약을 챙기고 나오지 않았다. 내과에서 시원한 물을 두 컵이나 들이켜고 내려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약사님이 조용히 이름을 부른다. 아직 돌아가지 않은 공황친구를 일으키고 약사님에게 다가갔다. 몸은 휘청거리고 이마는 차갑다. 식은땀이 범벅이다. 정신을 부여잡고 서서 약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산을 하고 약국을 휘청거리며 걸어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바람이 두 뺨을 스치며 지나간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햇살도 다시 내 몸에 살포시 앉았다 간다.
검정 약봉지와 전지를 들고 있는 양손이 버거웠다. 누군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헛된 생각을 버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공기를 마셨다. 하늘이 너무나 푸르다. 오늘은 공황 친구가 제법 오래 머문다.
걸어서 올라가는 작은 언덕길이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 고개를 숙이고 땅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수많은 사람에게 내어 주었던 자리에 패이고 깨진 자국들이 흉터처럼 나 있었다. 어머나, 너도 상처가 있구나! 아팠겠구나!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길을 내어 주면서 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언덕길을 다 오르고 있었다.
나만 아픈 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더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다. 오늘 찾아온 공황, 네가 나에게 이렇게 일깨워주고 가는구나! 삶이라는 길 위에 존재하는 누군가는 더 큰 아픔 속에서 인내하며 무언가를 깨닫고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