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폭포수,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의 변화, 세상에 당연히 피어나는 것은 없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는 고행을 하는 것 또한 이유가 존재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있듯이, 그냥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은 없다.
연어의 영상을 보며 왜 그 험한 길을 목숨을 담보로 되돌아가야만 하는지, 생각해본다. 우리도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 지독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는가? 혹자는 너무 버거워서 자살이라는 행위를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 인간도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이라는 곳을 찾고 부모를 찾아간다.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그 죽음이라는 험한 행로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반복되는 삶이 될 지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 번 만들어진 제도나 법은 바뀌기 어렵다. 특히 그것이 문화가 되고 습관이 되어버린다면 민족성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생명체의 뇌를 지배하는 것이 과연 어떠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사악한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영웅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환경이라는 공간 속에 둘러싸여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영향을 주고 살아가고 있을까? 자문 또한 해본다.
영상 말미에 보이는 모습인 자신의 육체까지 탄생한 생명체에 내어주는 모습이 인간인 고등동물의 모성애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요즘 그렇지 않은 소수의 부모의 모습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순환이라는 고리 속에서 생명체들은 이어지고 존재하고 있다.
몸이 기억하는 삶의 방식. 소위 본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본능은 타고난 것일까? 학습되는 것일까? 본능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의미는 전자가 맞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 볼거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관습처럼 내려오는 것 중 우리는 본능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생명체의 삶은 비슷하다. 수많은 먹이 사슬 속에서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내고 있다. 보이되 보지 않거나, 보지 못하는 것들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인간 만이 존재하는 지구가 아니므로 공존의 의미를 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