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흙처럼

-평온

by Sapiens


한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살아야 했다. 살아내야 했다. 그래서 오늘도 변함없이 신영은 신발을 벗은 채 숲길로 뛰쳐나왔다. 숲길은 항상 발끝을 자극하지만 그 자극은 신영의 심장을 어루만져준다. 촉감이 주는 거친 느낌이 오히려 마음을 에이는 아픔보다 시원했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은 숨통이 트일 때가 없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노예처럼 부리는 아버지, 마약중독이 되어 자신을 파괴하는 어머니, 그리고 작은 영혼 어린 동생 사라가 숨 쉬는 공간, 그곳이 바로 신영 가족의 모습이다. 신영이 집으로 다시 찾아들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 어린 동생 사라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신영은 숲 속에서 종일 걷다 보면 정화된 마음으로 집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동안 어린 사라는 소굴과 같은 집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걱정할 여력 따위는 신영에게 없었다. 자신이 살아내야 했기에, 숨을 쉬기 위해 달려 나가 긴 호흡으로 진정하고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소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신영이 살아가는 한 방법이었다. 신영의 주위에는 친구도 친척도 없었다. 오직 어린 영혼 사라만이 짐짝처럼 존재할 뿐이다.



신영은 숲 속에서 흙을 만지며 흙처럼 부서지고 싶은 감정이 올라올 때가 많았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검은흙을 쥐고 비비던 어느 날, 손가락 사이로 뭉쳐진 흙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순간 이상한 쾌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신영은 자꾸 흙을 만지곤 했다. 덩어리를 쥐고 조금만 힘을 주면 무너져 흩어지는 모습이 어떠한 힘도 없는 마치 나약한 자신과 같아 보였을까?



순간마다 흙이 되고 싶었다. 평온해 보이는 숲 속에서 새들과 숲 속 동물들과 호흡할 수 있는 시간들이 신영에게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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