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률
남에게 대접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누군가에게 다가가 무엇을 베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우린 누군가를 선택하고 그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에 따라 무엇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과 틀어지는 감정이 생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업이 따르는 법, 어떤 마음을 갖고 행하든 우리가 행하는 것들의 결과에 책임이 따른다.
순수한 마음으로 행한 행위에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은 나쁜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을 돌이켜 되새김질해 본다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 시간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 수 있는 해답의 시간이 되어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맺고 끊는 것을 잘해야 한다. 너무 많은 인연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것 또한 수많은 업 속에 갇히는 것이다. 끊어내야 하는 관계에서는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용기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계속 끌려다니게 되거나 무시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한 경험으로 타인을 책망할 것이 아니라 상대를 판단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 판단의 끝에는 끝맺음과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고 미련과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에 갇혀 스스로 우리 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황금률이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말한다. 그 대접이 넘치거나 부족할 경우 우리의 마음속에는 그 행위에 대한 업이 따르게 되어 있다. 그러니 내 행위에 대한 업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처를 상처로 받지 않는 것도 지혜로움이며, 끊어내야 할 때 끊어낼 수 있는 것 또한 용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처럼 인간관계가 힘들고 버거울 때가 많다. 그러니 알아차렸을 때 곧바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또한 자신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부딪히는 감정 속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선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타인을 배척만 한다면 그 행위에 대한 대가로 그대로 배척당하는 관계망 속에 존재하게 된다. 그러니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한다면 상대에게도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과하지 않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결과에 대한 업을 책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