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6:00>
인생 삭제모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하지만 때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자신을 괴롭힐 때가 있다. 땅에서 캐내는 고구마의 뿌리처럼 잊히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재생산되는 일들 속에 갇혀 자신을 당시의 시간 속에 갇히게 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삭제 모드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생각의 줄기 속에서 엉키고 섥키며 현재의 시간 속에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더 심하게 되면 환청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기억 속에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기억을 서랍 속에 넣어두기도 하지만 꺼내 놓아 부여잡고 흐느끼거나 노여움 속에 자신을 품는 경우도 있다. 매일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행위임에도 우리는 삭제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하지만 무조건 삭제하라는 말이 아니다. 휴지통에 버릴 때는 쓸모가 없을 때 행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내주는 일도 우리는 잘해야 한다. 생각을 떠나보낼 때 또한 그 생각의 생성과정에서 자신을 치유하고 흔쾌히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어리석음과 탐심, 그리고 노여움으로 부여잡고 삭제모드를 누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때론 쉽지 않은 선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떠나보내는 일을 제 때에 하지 못할 때 정말 망각의 시간이 빨리 찾아오기도 한다. 뇌가 과부하되어 이겨내기 힘들게 되면 자신이 망가지는 상태임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우리는 삭제모드로 스스로 진입하게 되기도 한다. 치매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게 된다. 그러니 때론 삭제모드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신선한 새로운 생각으로 뇌를 쉬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과거가 아닌 현재 속에 자신을 두는 일이기도 하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의 길로 인도한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의 그물 속에 갇히게 된다. 그러니 그 길을 삭제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나의 공황도 그렇게 찾아왔을 것이다. 반갑지 않은 손님은 지금도 떠나지 않고 동침하고 있다. 그의 방문은 나의 자라나는 생각들을 잘라주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너무나 무성하게 자라나 뇌를 가득 메우고 있을 때까지 나는 내 안에 갇혀 세상을 탓하고 있었다. 빠져나오고 싶어도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길을 잃을 채 방황하다 만나게 된 공황이다.
공황이 찾아올 때마다 힘들지만, 감사히 동행을 자처한다. 제 때에 삭제하지 못한 수많은 상처들을 부여잡고 있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였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제는 거침없이 삭제모드를 취한다. 예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공황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오늘도 나는 삭제모드를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