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축복

by Sapiens

유언

그날은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팔십 여생을 사신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곤 계속 병원에서 머물고 있었다. 4년이 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수술을 하고 입퇴원을 반복하며 요양원으로 로컬 병원으로 옮겨 다녀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의사 선생님은 두 번째 위독한 상태라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무감정 상태로 서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부탁하신 뒷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와의 시간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중환자실에 단 둘이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부르르 떨더니 다시 눈을 뜨시고를 반복하시고 있었고 나는 다시 어머니의 눈을 감겨드리며 간호사에게 왜 이러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죽음을 처음 맞이하는 나는 그 과정이 죽음으로 가고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전화벨소리가 들리더니 간호사가 병실 짐을 지금 옮겨달라고 하신다. 나는 나중에 옮겨도 되냐고 물어보았지만 병실을 비워줘야 다음 환자가 들어오신다고 부탁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서둘러 병실로 가서 짐을 차 트렁크에 쑤셔 넣고 있었다.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벨이 울린다.


“어머니가 위독하셔”

넷째 언니의 전화였다. 나는 엘리버이터로 뛰어갔다. 그리곤 중환자실로 들어서는 순간, 가족들이 어머니를 메워 싸고 있었다. 나의 자리는 없었다. 그동안 투병을 하시던 어머니를 찾지 않았던 가족들이 그제야 모두 모여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모습이었다. 나는 쓴웃음만이 나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래 어머니의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지.’

나는 의사 선생님과 이후의 일을 상의하고 장례절차를 밟았다.


생명이 멎은 어머니를 앞에 두고 모두 한 마디씩 하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헛헛한 마음으로 돌아 나왔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놓쳤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막내인 나는 부탁하신 장례와 49제를 하기 위해 정신을 놓칠 수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릴 여유 따위는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유언이라면 유언인 부탁을 행하면서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알게 되었다. 선견지명이랄까? 세월을 오래 사신 연륜에서 나오는 식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당신의 장례비용 일체를 나에게 맡기셨다. 가족 모두가 장례식장에 와서 머물렀다. 아마도 마지막 가시는 길 그 모습을 보고 싶었으리라.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어느 순간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이지만 항상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죽음이 찾아와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게 매일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미루지 않게 되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표현을 미루지 않는다.


죽음은 떠나는 사람도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아픔이다. 그러니 죽음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항상 유언처럼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죽음은 원래 있던 곳으로 가는 것이니 행복한 일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라고 말이다. 인생은 각자의 삶이 있으니 타인의 삶에 너무 얽매여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유언은 죽음 앞에 다 달아서 하지 않길 바란다. 일상 속 우리는 아침을 맞이하듯 죽음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멀리 두지 않길 바란다. 원래 있던 곳으로 가는 것이니 죽음은 축복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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