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낯선 환경에 노출된다. 그 속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된다. 누군가와 연결되는 인연은 얕든 깊든 서로에게 부딪힘과 상처를 가져올 때가 많다.
관계 맺음에서 우리는 이해라는 이성이 작동되기도 하고 불일치되는 의견을 치열하게 꺼내놓기도 한다. 부딪힘은 과연 이해의 정도가 부족할 때 나타나는 감정일까? 그럼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란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서 가족과의 수많은 부딪힘은 나의 무지의 결과임을 알게 되었다. 살다가 힘든 마디에서 만나는 생경한 부딪힘 들은 자신을 힘들고 그 상황에 매몰되게 한다.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방황하다가 깨닫게 되었다.
이해한다는 것은 새로운 타인의 입장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내 감정과 생각인 자신의 입장에만 갇혀 있다면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기 어렵다. 그렇게 반복되다 보면 진정한 이해의 감정이 생성되기 힘들게 된다. 그 결과 오해와 함께 인연의 끈은 끊어지기도 한다.
타인과 맺는 관계에 대한 나의 무지함에서 이해의 부족함이 생겨난다. 제대로 알 수 없을 때 오해가 발생하고 충돌이 일어나듯이 우리는 자신의 무지함에 관대한 경향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은 한순간에 장착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서 벗어나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수용할 수 있을 때 이해라는 행위가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여러 상황들을 유추하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와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은 이해하는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의 의미를 공감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안다는 자만으로 자신의 무지함을 포장하고 있다. 그 무지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정애란 작가의 <잊기 좋은 여름>이라는 글 속에서 만난 이해의 정의를 공유해 본다.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 나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