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브라카(BRACA) 변이 유전자

2020. 5.18 월

by 전해숙

심한 설사로 재입원한 지 18일째다. 드디어 내일 퇴원이 결정되었다. 반가웠지만 2차 항암이 미뤄져 걱정이다. 제대로 이행됐다면 지난 12일 시작했어야 한다. 미국으로 보낸 혈액 샘플 분석 결과가 오지 않아서라고 했다. 결과에 따라 임상에 참여하게 되면 이후 모든 관리는 임상 간호사가 주관하고 아니면 그대로 교수님이 관리하는 시스템이라고. 오늘도 연락이 없으면 퇴원했다 다시 오라나.


오후. 마침내 임상 간호사가 결과를 통보해 왔다. 브라카 유전자에 변이가 있어서 임상에 참여할 수 없다고.

기대하고 기다린 게 무너진 순간, 맥이 풀렸다. 10% 정도 탈락자가 나온다는데 거기에 해당될 줄이야. 암 카페엔,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하는 것이 도움 된다고 했는데… 실망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얼굴에까지 나타난 실망감을 본 아들이 위로한다. 그 역시 임상 참여를 원했으니 실망했을 텐데 우선 어미를 다독이려 애쓰는 게 훤히 보인다. 진약이든 위약이든 먹어볼 기회마저 놓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브라카(Braca) 유전자.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로 인해 더 알려진 유전자다. 그녀는 예방 차원에서 난소와 유방을 미리 절제했다. 당시 뉴스를 보며 욕을 했다.

‘미쳤어, 발병하면 해도 될 텐데 굳이 미리 절제할 이유가 뭐야’

그런데 내가 그 경우라니... 이제야 이해 된다. 일단 발병하면 내가 거쳐온 그 과정을 겪어야 한다. 수술을 해야 하고, 그 힘들다는 항암을 해야 하고, 항상 재발을 걱정해야 한다면 사전 절제가 현명한 선택일지도.


아들은 본격적으로 브라카 유전자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난소암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게 없는데, 유일하게 밝혀진 게 이 유전자 변이이고 모계 유전성이란다. 그동안, 암은 주변 환경이나 개인의 안 좋은 생활습관 등으로 발병한다고만 알고 있었다. 식생활도 신경 썼고, 운동도 꾸준히 했고, 환경적 위험도 없었는데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내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유전성이라니... 한편으론 위로가 되었다. 적어도 내 잘못은 아니라는 게 밝혀졌으니.


아들이 들려준 얘기는, 그저 실망하는 어미 마음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원인이 밝혀진 만큼 실제 연구도 가장 많이 되어 있고 자연히 약도 거기에 초점을 맞춰 개발되었다고 한다. 가장 약효가 좋은 경우라고 하니 차츰 실망이 희망으로 바뀌어갔다.


무엇이 가장 좋은 길이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나의 길임을 인정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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