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5 목
벌써 햇살이 제법 따갑다. 오전에 운동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일찍 나섰다. 아들도 같이 가겠단다. 혼자 갈 수 있다 해도 자신도 좀 걸어야겠다고. 사람들을 피해 후문으로 나갔다. 코로나로 아예 사람 구경을 할 수 없는데도 아는 사람 만날까 걱정이 앞서간다.
"엄마 병 아니었으면 이렇게 엄마랑 걸을 기회가 있었을까?"
"그래, 각자 살기 바빠 얼굴 보기도 힘들겠지."
무엇이든 장단점이 공존함을 새삼 느낀다.
얘기가 이어지다 아들 입에서 '유언장 작성'이란 말이 나왔다.
‘얘가 왜 이리 앞서가는 거야? 말로는 긍정 마인드를 가지라면서, 마음으로는 20%라는 5년 생존율을 담아두고 있나?'
갑자기 가슴이 아려온다.
“나 아직 안 죽을 건데?”
힘없는 목소리지만 반박하듯 내뱉었다.
“그런 뜻이 아니고..”
아들의 말인즉슨 이랬다.
암 환자 보호자들이 카페에 올려준 조언이란다. 유언장이야말로 컨디션 좋을 때, 정신이 온전할 때 써 두는 게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좋다고. 재발과 전이가 이어져 체력이 바닥나고 고통까지 더해지면, 본인으로선 말할 기력도 정신도 없어진다고. 컴퓨터로 작성해 저장할 수 있어 매년 읽어보고 지울 것은 지우고 더할 것은 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죽음에 임박해서 유언장을 쓰고 있다면 얼마나 서러울 것이며, 하고 싶은 말이 평온한 마음으로 나오겠냐고, 아들은 의미 있는 말을 보탰다. 그뿐인가. 장례 유형과 장지 결정 등에 본인 의견이 반영될 수도 있다. 가족들이 뒷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 데도 훨씬 수월할 테니 모두에게 윈윈이 맞다.
수긍이 간다.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본인 의지대로 하나씩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예기치 않은 사고사가 줄 수 없는 선물인지도. 말로 할 것과 글로 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 특히 남편에게는 얼굴 보며 말로는 못했지만 글로는 전할 수 있는 감정이 더 많다. 자식 입장에서는, 살다 보면, 부모님은 이 세상에 없는데, 그들의 조언이 필요할 때가 왜 없겠는가. 그럴 때 해 줄 말을 남기는 것도 부모가 할 일이다.
최근엔 웰다잉(Well-dying) 체험장도 생겼다고 한다. 유언장 작성 프로그램도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내 일이 될 줄이야. 남편, 딸 아들, 사위와 손자에게, 오빠들, 친구들에게, 그러고 보니 할 말도 많고 인사 남겨야 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이니 적다면 오히려 이상할지도.
진지하게 하나씩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