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이러고도 살 수 있을까?

2020. 4. 2 목

by 전해숙

수술 다음날.

여전히 호스가 줄줄이 달렸는데 누워만 있지 말고 조금씩 움직이란다. 헉! 대수술을 한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몸을 놀리라고? 아들은 더 다급해한다. 가만 있으면 장 폐색이 올 수 있다나 어쩐다나 겁을 잔뜩 준다. 간호사도 거든다. 배를 움켜쥐고서라도 걸어야 한다고.


까짓것, 움직여도 되니까 하라고 하겠지. 난 원래 선생님 말 잘 듣는 모범생 아니었던가. 일단 몸을 일으켜 침상에 걸터 앉아 보았다. 느리게나마 성공했다. 얼마를 앉았다가 아들 부축을 받으며 서기를 시도했다. 허리를 똑바로 펼 수는 없지만 일단 섰다. 한 발자국 내디뎌 보았다. 후들거리는 다리. 한 걸음을 옮겼다. 이젠 복도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아들과 함께 천천히 나가 보았다. 링거 대가 훌륭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휴게실을 기점으로 거리 표시가 되어 있고 급할 때 잡을 수 있는 손잡이도 벽을 따라 쭉 설치되어 있었다. 조금씩 걸음을 옮기다 보니 150m를 걸었다. 놀랍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야겠다.




아들로부터 자세한 수술 내용을 들었다.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장장 8시간의 대수술이었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건 상상도 못했다. 수술 끝났다는 통보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가족과 절친 H가 오후 늦게까지 연락이 없자 수술 중 큰일이 벌어진 줄 알고 애간장을 태웠다고. 남편은 결국 조퇴하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오기까지 했단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술 내용이 더 경악하게 했다. 막상 개복하고 보니 복강경 CD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많이 퍼져 있었다고 한다. 암세포는 건드리면 확 더 퍼진다고 어른들이 말할 때 믿지 않았는데 사실일까?

복강경 조직 검사와 수술 사이 2주 정도 간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이 수술 설명 후 주셨다는 보고서를 보여달라고 했다. 내부 장기가 그려진 도면에 수술 부위, 수술 후 주의 사항 등이 자세히 적힌 A4 용지 4장의 설명서였다. 무엇보다 충격이었던 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잘려 나간 점이었다. 자궁, 난소, 난관, 대망, 골반과 대동맥 주위의 림프절, 충수 저전방(자궁 부근의 직장), 소장 일부, 우측 횡격막, 골반막이 절제되었다고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간 표면은 긁어내고 콩팥 겉의 것은 떼어내고 했다니 복부 전체에 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나 많은 내 몸의 일부가 없어졌다니, 이러고도 살 수 있을까? 살더라도 건강에 지장 없을까? 정말 내 인생은 이제 내리막이구나. 슬프고 두렵다. 아들에게도 충격이었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문을 나서다 되돌아와 어깨를 두드려주던 교수님이 참 고마웠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과 나를 크게 위로해 주는 한 줄 설명이 따로 있었다.

‘수술 후 생존율을 결정짓는데 가장 중요한 예후 인자 중 하나인 수술 후 잔류 종양의 크기는 0cm’

수술 보고서에 모든 의사가 그렇게 적는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문구는 인쇄된 것이었고 자필로 적은 것은 '0'이라는 숫자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한 글자는 격려와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의 눈에 보이는 암세포는 없다는 의미라고 한다. 교수님이 잘라내고 긁어내고 떼어내며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셨다니 믿고 싶었다. 그러려니 하루 종일 걸렸는지도. 의사도 사람이다. 얼마나 꼼꼼하게 마지막까지 제거하는가에 따라 어찌 차이가 없으랴. 순간 이정윤 교수님이야말로 생명의 은인으로 다가왔다. 절대 잊지 못할 은인이다.




병실 에티켓이 필요.

병원 침상을 구분 짓는 것은 얇은 커튼 하나가 전부다. 옆 침상 환자와 보호자가 수다를 떤다. 갑상선 암 환자라고 병실 전체에 알리고 있다. 다행히 바로 퇴원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환자 역시 갑상샘 암환자라는데 소리도 더 크고 웃음까지 요란하다.


몸은 불편하고 조용히 쉬고 싶지만, 들리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도 없고.ㅠㅠ 간호사에게 주의를 좀 줄 수 없겠냐고 부탁했다. 주의를 줘도 그때뿐이라 자신들도 어쩔 수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할 수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2인실로 옮길 수 있냐고 물었다. 신청하면 퇴원 환자 나오는 대로 먼저 옮겨준다고 한다. 유별나게 군다는 소리 들을까 걱정했는데 시스템이 되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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