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14. 수
여느 때처럼 컨디션 확인을 위해 걸려온 아들의 전화.
“엄마, 폰 들고 제가 자던 방으로 가 보세요.”
“그래, 알았어. 왜?”
“엄마에게 드릴 선물이 책꽂이 작은 서랍에 있으니 꺼내 보세요.”
“엥? 웬 선물?”
“어제 제 생일날, 엄마에게 쓴 편지예요."
순간 왈칵 눈물부터 쏟아졌다.
울먹임을 눈치챈 아들,
"아이고 울보 엄마, 읽기도 전에 벌써 울기부터 하면 어떡해요"
자신의 생일날 엄마에게 감사 편지를 쓰는 아들이 그리 흔할까?
아들은 엄마가 ‘편지’라는 말에 울기부터 하는 이유를 절대로 모른다.
아들이 고교생이던 그날도 자신의 생일이었다. 아침에 현관을 나서며 메일 한 통 보냈으니 열어보라고 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고 걱정 반 궁금 반으로 당장 열어보고는 한참동안 엉엉 울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받지만 정작 인사받아야 할 사람은 그렇게 배 아파가며 자신을 낳아준 엄마’라고 편지는 시작하고 있었다. 당시는 IMF 사태로 남편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 때였다. 경제적 어려움을 위해 밤늦게까지 과외하는 엄마가 안쓰럽다고. 누군가 자신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엄마'라고 답할 거라고 했다.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전공을 살릴 수 있어 좋고, 수입이 따라서 도움 되고, 전혀 힘든 줄 모르고 하던 일이다. 다만 대상이 중고생이다 보니 오후부터 밤까지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아들 눈에는 힘들게 보였나 보다. 표현에 서툰 경상도 토박이 남편은 정작 한 마디도 않는데 그걸 알아주고 표현해 주는 아들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그렇게 쏟아졌다.
무엇보다 ‘한순간도 허비하는 시간 없이 매사에 열심인 삶의 태도’에 엄마가 자랑스럽고 존경한다고. 그보다 더 큰 뿌듯함이 어디 있으랴.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다. 적어도 형편없는 엄마는 아니었다는 생각에 그날의 행복과 아들에 대한 고마움은 평생 잊지 못할 일로 남았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솔직한 감사와 행복을 가득 담아 답 메일을 보냈었다.
그랬던 아들이 또 편지를 써 놨으니 읽어 보란다.
어찌 눈물부터 나지 않겠는가. 이번엔 상황이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데...
서랍 속엔 제법 도톰한 봉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열어본 순간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리포트 용지만큼 큰 노란 종이에 여백 없이 빽빽이 손글씨로 써 내려간 장장 네 장의 편지!! '눈물이 앞을 가려 읽을 수가 없다'라는 표현이 이래서 나온 말이구나. 중간중간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휴지를 찾아야 했다.
앞 두 장엔 죄송했던 것들, 마음에 걸렸던 것들이란다. 현실은 노력과 능력 순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며 투정 부렸다고, 엄마를 좀 더 자주 찾아뵀어야 했다고. 다음 장엔 어미 칭찬이 이어졌다. '최선을 다해 살면 적어도 후회는 없다'는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고. 그런 삶에 자부심 가져도 된다고. 100점을 주고 싶지만 재테크에서만은 결과가 별로라 10점 뺀다고.
그다음은 당부였다. 25세에 엄마와 이별한 충격이 너무 커서 아들딸을 위해서라도 꼭 살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아들은 신경 쓰였나 보다. 자신은 남자고, 이미 서른을 넘었고, 사고방식 차이도 커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이 힘들어할 모습이 엄마의 마지막 걱정이라면 그런 건 절대 안 할 거란다. 무신론자이지만 처음 소식을 접한 3월 21일 이후 단 하루도 기도를 빠뜨린 적 없다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술 마시고 새벽 2시 넘어 귀가해도 항상 기도했다고. 자신의 수명에서 10년을 떼어내어 엄마에게 주시라고 기도한단다.
마지막 장엔 함께 한 지난 추억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캠핑 가서 함께 북두칠성 찾은 일, 운동회날 엄마가 만들어준 양념 꼬마 돈가스, 같이 쑥 캐서 쑥국 끓여 먹은 것, 함께 간 가족 해외여행 등등. 사느라 아등바등 하지만 결국 돌아보면 남는 건 인생의 우여곡절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순간순간의 행복인 것 같다고. 내일 당장 세상을 떠난다 해도 엄마 인생은 참으로 잘 산 인생이란다.
편지는 밑줄 그어진 굵은 글씨체 두 문장으로 끝나 있었다.
"내 엄마여서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엄마가 아닌,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컨디션이 좋을 때 유서를 써 두라고 몇 번이고 말하던 아들이다. 암 환자는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악화될 수도 있고 몸이 힘들어지면 하고 싶었던 말도 제대로 다 못 한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조금만 피곤해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통증이 심하든지 전신에 힘이 없다면 자판을 두드리는 것마저 어려울 것이다. 아들은 더 늦기 전에, 엄마의 정신이 또렷할 때, 글자마다 공감할 수 있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놓았음에 틀림없다. 나중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가장 가까운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할 기회를 내게 주는 것일지도. 혹시 답장을 쓰려면 사라지지 않게 메일로 보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아들아!!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니? 그런데 지금은 아니란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 어느 정도의 예감은 느끼지 않을까? 지금은 안 쓸래. 꼭 나을 수 있을 것 같거든.
한 가지는 분명 말할 수 있어. 네가 써 준 두 편의 사모곡은 꼭 나의 관 속에 넣어서 하늘나라까지 갖고 가 영원히 간직할 거야. 고맙고 사랑해!
(아들이 자필로 쓴 네 장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