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0 일
30년 가까이 일터였던 공부방엔 수업용 화이트보드, 보드마카, 지우개, 각종 수능 영어 문제집 등이 고스란히 그대로 있다. 언젠가는 정리해야겠지만 서두를 이유도 마음도 없다. 다만 6개였던 의자는 공간을 차지해 3개를 없앴다. 다른 방에 있던 책장과 책을 옮겨와 한쪽 벽면을 채우니 제법 아늑한 서재 폼을 낸다. 책도 읽고, 투병 일기도 쓰고, 햇빛 잘 드는 오후엔 일광욕도 하고, 마음에 쏙 드는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서가를 훑어보다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삶을 고치는 암 의사입니다’. ‘암에 걸렸는데 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가?’라는 표지 문구가 확 와닿았다. ‘30년간 수만 명의 삶을 치유한 이병욱 박사가 쓴 암 관리의 정석’이란 문구도 보인다. 아들이 암 관련 책을 몇 권이나 사 들고 왔었는데 그중 한 권이다. 그동안 체력적으로 읽을 여유가 없었는데 이젠 이거야말로 날 위한 책이라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이병욱 박사는 암 수술에 있어 재수술이 0% 일 정도로 탁월한 외과 전문의라고 한다. 그런 그가 15년 만에 수술 메스를 던지고 보완통합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암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단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암은 수술을 잘한다고, 항암치료와 새로 개발된 항암제 복용으로 정복될 수 있는 병이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박사님은 웃음치료 눈물치료 가족치료 등을 적용한 개별 맞춤 치료를 한다고. 최신 의학으로 암세포 활동을 최대한 억제하고, 동시에 면역력을 높여 암을 견뎌내며, 암과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게 최고의 치료방법이라는 결론이었다. 암 치료가 생명 연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주장과도 통했다.따라서 5년 완치라는 말도 잘못된 표현이고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 할 손님으로 생각하란다. 즉, 암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이야말로 암을 극복하는 최상의 전략이라고. 그러기 위해 환자, 보호자, 의사는 각자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설득력 있게 기술해 놓았다.
그의 지론은 책장을 넘길수록 더 와닿았다.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정상인도 하루에 5천~ 1만 개의 암세포가 생기지만, 암에 걸리지 않는 건 인체의 자생 능력 덕분이라는 것. 즉,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방어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해결책은 면역력 키우기라는 얘기. 그 면역력을 한 큐에 키울 수 있는 약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렇지 않으니 보완하고 통합하는 치료를 해야 하는 게 맞다.
환자가 지켜야 할 것.
1. 제대로 먹고 배설하기.
2. 제대로 호흡하기(맑은 공기 마시기)
3. 제대로 움직이기(산책 스트레칭 등)
4. 제대로 쉬고 잘 자기
5, 마음 다스리기( 불평 시기 증오 등 멈추기)
난 이중 몇 가지를 잘하고 있을까? 자만인지는 모르지만 5가지 모두를 잘 실천하고 있다. 읽을수록 신이 났다. 예후가 좋은 경우에 속한다는데 그래서인가?
의사가 체크해야 할 사항도 제시해 놓았다.
1.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와 암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는가?
2. 의학적 처치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적정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3. 가족 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가?
4. 환자의 마음 상태가 감사와 사랑을 느끼며 평온한가?
5. 필요한 영양소를 제대로 보충하고 있는가?
6. 목적이 있는 건전한 삶을 이어가는가?
7. 신앙으로 힘을 얻는가?
8. 주변에 믿을만한 의사가 있어서 가족과 함께 투병해 주는가?
9. 불필요한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운가?
10. 보람 있게 시간을 쓰고 있는가?
의사가 지켜야 할 치료 매뉴얼이라고 했지만 역으로 환자는 이것들을 잘 지키는 것이 극복 방법이다. 난 어떤가? 신앙이 없는 것만 가위표다.
읽다 보니 곳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모두 공감하는 부분들이다. 언젠가 암 카페 회원이 무료로 보내준 책도 있다고 했는데 그 환자의 흔적일까? 아들은 자신이 그어놓은 것이고 엄마가 열심히 읽고 있다는 말에 기분 좋은 눈치다.
환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와 바라보고 가야 할 등대가 새로 생긴 것 같다. 수명 연장보다는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 정확히 박사님 생각과 일치한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그 어떤 것도 암 환자에겐 박탈로 느껴진다는 말씀에도 끄덕끄덕. 일상 복귀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가.
남은 세월 함께 가야 할 손님으로 모시며, 할 수 있는 일상을 이어가며, 덤으로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기. 그러면 암은 축복이 된다.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달리 살게 해 주는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