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8. 목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실감하는 게 하나 있다. 세상사 모든 일에는 나쁜 면만 있는 것도, 좋은 면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전화위복' '새옹지마' 같은 4자 성어가 그래서 나온 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암 투병 역시 마찬가지다. 병 덕분에 아들과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많은 대화를 했고, 아들의 장점을 다시 보게 됐고, 엄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확인했다. 아프지 않았으면 영원히 모른 채 저세상으로 갈 뻔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친구와의 관계도 그렇다. 막연히 절친, 베프라고 불렀던 H와의 우정이 얼마나 진실되고 컸던가를 확인한 것도 병이 안겨준 선물이다. 이젠 하루도 목소리 듣지 않고 지나면 뭔가 허전할 정도가 되었다.
오늘이 딱 그랬다. 전화를 거니 이심전심 통했나 보다며 전화하려던 참이었다고. 그런데 목소리 톤이 달랐다.. '아침마당'이란 TV 프로에 유방암 환자 아내를 둔 의사가 나와 '암 극복 6 계명'이라며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더란다. 나를 위해 얼른 메모를 했는데 다 하고 보니 이미 모두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라 ‘역시 내 친구네’ 했노라며 추켜 세우기까지 했다.
당연히 1번이 뭐였는데? 물었고, 답을 듣는 순간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함께 울어라” 였다니.
훗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 또 친구의 정성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생각을 보태 옮겨 적는다.
1. 함께 울어라.
암 선고를 받으면 누구나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고 본인도 가족도 큰 충격에 빠진다. 의학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암은 곧 죽음과 연상될 수밖에 없다. 치료 방법이 있어도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긴 싸움인 것은 분명하다. 그것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얼싸안고 함께 우는 집은 많지 않다. 본인은 충격을 안겼다는 죄책감에, 가족들로서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환자를 더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운다.
우리 가족 역시 그랬다. 남편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이 우는 모습만은 도저히 볼 수 없어, 바로 달려오는 것도 전화를 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
그런데 그것을 절친이 해 주었다. 둘이서 전화를 들고 대성통곡 했던 그 밤을 난 하늘나라에 가서도 잊지 못한다. 돌아보니 그 과정이 꼭 필요하다. 놀랍게도 실컷 울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이미 닥친 현실이고, 난 그녀의 그냥 친구가 아니라고, 내가 무너지면 그녀도 무너진다는 말 한마디에, 끝까지 싸워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방송에 나왔던 그 의사도 의사 이전에 남편으로서 함께 부둥켜안고 운 후, 아내를 꼭 살려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는지 모른다.
2. 치료 계획 세우기
빨리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막상 현실을 수용하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몸속에서 암세포가 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1분 1초가 급해진다. 속만 더부룩해도, 아랫배가 묵직하기만 해도, 속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만 나도, 꼭 암세포가 퍼지느라 그런 것만 같았다. 병원도 많고 치료 방법도 다르다. 어느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을 것인지 이 병원 저 의사로 헤매기도 한다. 혼자서 결정하기는 무리다. 가능성이 절반이라는 말에 아이들에게 충격을 줄까 봐 얘기도 않고 무려 두 달을 보내버린 것이 가장 후회된다.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야 한다.
3. 가족 역할 재정립
어쩜 이렇게도 내가 겪어온 길을 그대로 언급했을까. 말 그대로 가족 프로젝트였다. 무엇보다 아들이 생업을 접고 간호에 올인해 주었고, 딸은 육아에 전념하며 수시로 손자 동영상을 올려 희망을 갖게 했다. 남편은 아침잠이 많은 나를 위해 기꺼이 아침을 직접 챙겨 먹고 출근했다. 가족이기에 할 수 있는 역할 분담이다.
4. 환우(전우)를 찾아라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정말 필요하다. 모든 것을 의사 한 사람에게 의존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SNS 세상이다. 의사보다 더 해박한 지식과 정보와 경험을 가진 환자나 보호자도 있다. 같은 암이어도 병원마다 치료 과정이 다르고 환자마다 나타나는 부작용도 다르다는 것을 게시글과 답글을 통해 알 수 있고 수많은 동지들이 있다는 데서 위로도 얻는다.
단, 암 카페에 환자 본인이 가입하는 것은 고려해 볼 문제라는 데 아들과 나는 의견을 같이 했다. 환자가 힘들어하는 모습, 재발 삼발했다는 댓글,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몇 년 만에 소천했다는 글은 보호자는 몰라도 환자에게는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해서다.
많이 궁금은 했지만 가입하지 않았고 아들은 열혈 회원이 되었다. 열심히 검색하여 정말 필요한 정보를 많이 얻었고, 게시글도 올려 같은 처지의 보호자들이 고맙다는 댓글을 달아주기도 했다. 혈액암협회의 약제비 지원도 카페 회원 귀띔이 없었다면 몰랐고, 돈 때문에 표적 항암제를 포기했을 테고, 어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5. 주치의 200% 활용하기(진료 전 질문 리스트 만들기)
이것도 꼭 실천할 사항이다. 사실 회진이나 외래 진료에서 꼭 물어봐야지 했다가 나와서야 아차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또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TV 출연자는 자신이 의사이니 솔직한 조언을 한 것 같다. 진찰료에는 상담료까지 다 포함되어 있으니 귀찮을 정도로 물어봐도 된다고.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다. 하지만 막상 앞에 가면 환자도 의사도 마음이 바쁘다. 아들과 나는 꼭 물어볼 것을 직전에 확인, 혹시 빠뜨리면 서로 챙기기로 하고 진료실로 들어간다.
이런 면에서도 주치의 선택은 정말 중요하다. 리스트를 작성해 가도 의사 본인이 귀 기울여 주지 않으면 다 허사이기 때문이다. 주치의의 태도, 관심, 표현 방법 등은 환자의 마음을 흔든다. 의사에 대한 환자들 평을 카페에서 검색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6. 치료 과정 기록하기
어느 암 치유 관련 책에서도 읽은 권장 사항이다. 주로 보호자가 할 일로 소개했다. 간단하게라도 매일 환자의 상태와 반응을 기록하여 갖다 주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 모범 사례를 소개했는데 환자가 먹은 음식의 종류와 양, 환자의 얼굴색까지 메모가 되어 있었다. 이런 환자에게는 의사도 관심이 더 갈 수밖에 없다고 솔직히 말했다. 충분히 그럴 것 같다.
나는 그 역할을 직접 했다. 치료 시작과 함께 세웠던 목표이기도 하다.
‘신체적 정신적 모든 변화를 기록하자. 치료 도중 사망하더라도 최소한 그때까지의 기록이 또 다른 난소암 환우에게 참고가 될 것이고, 내 삶의 마지막 흔적이 될 것이다. 5년을 잘 넘긴다면 책으로 출판하자. 뒤져도 뒤져도 없어 아쉬웠던 '본인이 쓴 극복기'를 남겨 희망을 주자.’
실천을 위해서 가족과 오빠들에겐 공언까지 했다. 그것만으로도 적극적인 치료 동기가 되었고 우울에 빠질 겨를 없이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친구 말처럼 6가지를 잘 실천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뿌듯하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예후가 좋은지도 모르겠다. 재발과 전이의 가능성을 언제나 안고 있지만 지금처럼만 이어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