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최악의 돌발 상황

2021. 8. 6 금

by 전해숙

시부모는 외국에 살고 친정 엄마는 암 환자이고, 의지할 곳 없는 딸은 8개월째 육아에서 단 1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그런 딸 내외에게 2박 3일이라도 짧은 휴가를 주자고 남편과 뜻을 모았다. 오랫동안 코로나로 인한 집콕 생활의 무료함도 거들었다. 사위도 힘들었던가 보다. 휴가를 신청해서 둘만의 온전한 휴식을 갖겠다고 했다. 남편이 마침 휴직 중이고 나의 컨디션이 그나마 좋아 둘이서 봐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손자는 신기하리만치 낯가림이 없다. 어제 데려와 손자 돌보기 이틀째.


나의 투병 과정은 설사와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비보다는 낫다는 말을 위로 삼으며 장이 적응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체력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어제 하루 잠잠했던 변이 오늘은 또 심상찮다. 그리 묽지도 굳지도 않게 시작된 변이 10분 후 설사로 이어졌고 다시 10분 후엔 더 심했다. 급히 지사제 '스멕타' 한 봉을 먹었다. 그 후에도 몇 번 이어지고. 찌꺼기까지 다 나온 듯하여 계획대로 남편, 손자와 함께 근처 키즈카페로 갔다.


그런데... 결국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손자를 지켜볼 수 있는 의자에 앉자마자 느껴진 변의는 정확히 홍수에 밀려 내리는 토사였다. 어떻게도 막을 수 없는 장마철 토사. 화장실로 뛰어갈 틈마저 주지 않았다. 화장실 위치를 찾기도 전에 이미 팬티로 그득 밀려 나오고 말았다. 실내엔 어린이용 화장실밖에 없었지만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무조건 뛰어 들어가는 날 보고 몇 꼬마 녀석들이 ‘아줌마 거긴 어른들이 가면 안 돼요’ 소리치며 뒤따라 온다.


성인용 절반 크기도 안 되는 아동용 변기에 팬티의 설사를 털어내고, 보온병 넣었던 비닐봉지를 꺼내 응급 처치를 했다. 허벅지, 변기, 심지어 바닥까지 흘러내린 설사가 멘붕을 일으켰다. 다행히 가방 속엔 물티슈가 있었다. 닦고 닦고 또 닦아냈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 배어버렸을 냄새는 또 어떡하나. 얘들아, 정말 미안해. 좀 봐주라. 아줌마가 환자라 그래.


아, 암 환자는 이런 돌발 상황도 감내해야 하는구나. 화장실 밖에 흘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편에게 손자를 부탁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뒤처리를 했다.


어쩔 수 없다. 첫째도 둘째도 나의 건강이 먼저다. 그것이 온 가족의 걱정을 더는 것이니까.

오후에도 계속되는 설사에 결국 딸 내외를 호출했다. 딸은 왜 진작 전화하지 않았냐고 나무란다.

기운 없고 슬픈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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