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760만 원이 27만 원으로

2021. 10. 22 금

by 전해숙

기쁜 일이 네 가지나 생긴 날이다.


첫째.

10월 정기 검진일.

2주 전 찍은 하복부 CT 사진과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약을 사 오는 것이 오늘 할 일이다. 이제 19개월째. 지난번 대기실에서 만난, 울산에서 왔다는 분은 19개 월째에 재발했다고 했는데... 괜히 더 불안하다. 재발이 가장 빈번하다는 이 구간은 왜 이리도 더디게 가는가. 진료실 앞, 다음 순서라며 이름이 뜨면 조마조마 해진다. 유지 아니면 재발, 두 결과밖에 없으니. 어떤 선고를 받으려나 법정에 선 죄수의 심정이 이럴까.


CA125: 11

HE4: 44

소수점 아래는 언급도 않으신다. 정확히 지난달 수치와 같다. CT 결과도 이상무.

또 한 달 무사통과했다.


둘째.

울고 싶을 정도로 반갑고 기쁜 일이 생겼다. 드디어 드디어 약 값이 보험 수가로 되었다. 4주 치 거금 760만 원에서 272,500원으로 뚜~~ 욱 떨어졌다.

모든 환자가 다 해당되는 건 아니라고 한다. 브라카 변이가 있고, 고도 장액성이어야 하는 등 조건이 모두 맞아야 한다고. 다행히도, 정말 불행 중 다행히도, 그 모든 것에 해당되었다. 30만 원 정도는 실손 보험에서 보상받을 수 있으니 재발만 않으면 이제 치료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신이시여~~!! 감사 감사합니다.


세 번째 희소식.

둘째를 임신 중인 딸의 정기 검진 일이기도 하다. 이번 달엔 태아 성별을 알 수 있다 했는데 둘째도 아들이라고 알려왔다. 이 또한 정말 다행이다.

딸에게 브라카 변이가 유전되어 있는데 손녀라면 딸도 내가 하는 걱정을 그대로 답습해야 한다. 아들이기를 빌고 빌었다. 유전될 확률은 같지만 발병 확률은 아들에게서 현저히 낮다고 한다. 큰 손자에게도 잘된 일이다. 자라면서 점점 사이가 돈독해지는 것은 형제나 자매이다, 남매는 남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되기 십상이다.


네 번째 소식.

오빠들 브라카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기도. 세브란스에서 예약했다가 코로나 위험으로 가까운 경북대 병원으로 옮기는 등 거의 1년 만에 결과가 나온다.

놀라웠다. 4명의 남자 형제 모두가 비껴갔다고. 그럴 확률은 고작 1/16밖에 안 된다는데 대단한 행운이다. 남동생은 가장 어리지만 잔병치레가 잦았다. 유전을 믿었던 만큼 더 놀라워했다.


분명 반갑고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심리란 게 참 고약하다. 왜 아무 죄 없는 나에게만? 어쩔 수 없이 고개 드는 억울함? 피해 의식? 서운함? 뭐라 단정 지을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스쳤다. 그래도 내색할 수는 없다. ‘엄마가 유독 나만 더 사랑하셨던가 보다’라고 문자를 보내며 축하를 건넸다. 예약을 주관했던 셋째 오빠는 왠지 내게 미안하다고 한다. 그 또한 오빠 잘못도 아닌데. 모두의 운명인 것을.


장마철에도 가끔 햇빛이 쨍한 날도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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