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30 목
아들이 기어이 사표를 내고 왔다. 출근하면서 캐리어에 짐 챙겨 갔다가 퇴근하고 바로 왔다고 한다. 엄마 때문만은 아니라고 거듭 말하지만 어미 마음을 불편케 하지 않으려는 것임을 알고도 남는다. 좀 힘들다는 이유로 사표를 던질 녀석이 절대 아니니까. 명색이 의료계 종사자로서 아빠보다 자신이 간병을 맡는 게 낫다고 고집하니 말릴 수도 없다. 한편으론 든든하다. 남편보다 훨씬 더 섬세한 간병인이 되어줄 것은 분명하니까. 어미 간병을 위해 생업까지 접고 매달리는 아들이 얼마나 될까. 고맙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뿌듯하고, 기진맥진한 몸뚱어리에 온갖 감정이 범벅이 된다.
부처님 오신 날 공휴일이라 사위와 딸도 왔다. 온 가족이 모였건만 환자가 있는, 그것도 연이은 설사로 지친 환자가 있는 집안 분위기는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았다. 이젠 물만 마셔도 바로 화장실로 가야 하니 정말 너무 힘들다.
저녁 무렵 미열이 있더니 밤이 깊어 갈수록 더 높아졌다. 38도가 넘으면 무조건 응급실로 오라 했는데 그 언저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니 마음도 왔다 갔다 한다. 자정이 되어가면서 더 불안해졌다. 밤중에 더 심해지면 어떡하나, 아들은 결국 병원으로 가자고 한다. 딸은 급하게 입원 물품을 챙기고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장인 대신 사위가 운전하겠다고 나섰다. 참으로 고맙고 든든하다. '딸을 보내는 게 아니라 아들 하나 더 얻는 것'이라던 말을 처음으로 절감했다. 가로등도 깜빡깜빡 졸고 있는 한밤중, 퇴원한 지 보름여 만에 다시 응급실행이라니. 몸도 마음도 급격히 우울해진다. 응급실 앞에 내려주고 사위는 돌아갔다.
우주복을 입은 요원들이 야광봉을 들고 차량 통제를 하고 있다. 군대 야전 막사처럼 줄지어 설치된 천막들. 영락없는 공상 우주 영화 한 편이자 전쟁터다. 어느새 코로나는 살금살금 우리 삶의 가운데로 침범해 있었다. 암 환자마저 응급실로 직행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5월이 코앞이지만 속이 텅 비어버린 탓인지 한기가 밀려왔다. 온풍기라도 쬐며 막사에서 기다리라는데 밤바람이 점점 차가워져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앉아서 몸을 가눌 힘조차 없다. 병원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죽는가. 공포가 밀려왔다. 접수하고 온 아들이 놀라 자신의 어깨에라도 기대라며 내주었다.
이리로 저리로 몇 단계를 거친 후에야 겨우 건물 안으로 호명되었고 보호자는 대기실로 가라고 했다. 혈액검사 엑스레이 등 또다시 검사가 시작되었다. 일어설 힘이 없어 엑스레이 찍는 간단한 것도 겨우겨우 해냈다.
두 시간 후 혈액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임시로 누울 침상으로 안내되었다. 문패처럼 숫자로 표시된 침상들.거긴 밤이 아니었다. 반대로 더 환해지는 불빛, 어느 침상에선가 들려오는 고통의 신음 소리, 오가는 간호사와 선생님의 소리에 오던 잠도 도망갈 곳이다.
응급실에서도 설사는 계속되었다. 간호사에게 좌변기를 부탁했다. 링거를 꽂은 채 침상을 내려가 좌변기에 볼 일을 보는 것도 그리 힘들 줄이야. 먹은 것도 없는데 설사의 양은 왜 그리도 많은가. 모든 장기의 물질을 끌어다가 설사를 만들어내는 것만 같다. 내가 봐도 역겨운 변기를 살며시 침상 밖 한 귀퉁이로 내밀어 놓았다. 누구일지 뒤처리를 해줄 분에게 너무 미안하다.
아들은 어떡하고 있을까? 등 기댈 곳이라도 있을까? 대기실 의자에서 밤을 새워야 할까? 난방은 되는 곳일까?
종일 근무하고 사표 내고 오자마자 응급실로, 그것도 대기실에 앉아 밤 새울 아들을 생각하니 미치겠다.
시간은 이미 새벽 3시다. 간호사에게 필요 물품 때문에 그러니 폰을 좀 받아다 줄 수 있겠냐고 도움을 청했다. 고맙게도 금방 받아와 주었다. 폰 받으면 바로 전화 달라는 아들의 문자가 와 있었다. 열의 원인을 찾기 위해 소변, 혈액, CT 검사를 할 것이고 병실이 나오면 입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음 계속 응급실에 있어야 한대니 밤을 지낼 준비를 하라고 전했다. 패드 2~3매와 물티슈 양말 등도 부탁했다. 아들은 도리어 어미 걱정이다.
자신은 따뜻한 공간에 이불도 있으니 걱정 말고, 힘든 과정이지만 같이 이겨내자고, "사랑해요 엄마!"라고 한다. 또 눈물이 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사 선생님이 이름을 확인하며 커튼을 젖히고 들어오셨다. 마스크를 하고 있지만 왠지 낯이 익다. 혹시? 암 병동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어 참 고마웠던 남자 전공의 선생님? 나의 반응에 마스크를 잠시 내리며 웃어주신다. 세상에~~ 연인이어도 그리 반가울 수 있을까? 별다른 질문도 처치도 없었지만 '잘 오셨다'는 한 마디가 그리도 위로가 될 줄이야.
검사 결과가 나왔는지 좀 더 안쪽으로 침상을 옮긴다. 거기는 불이 더 환하다. 입원실이 나올 때까지 머무를 곳이라고 한다. 응급 환자도 어찌 그리 많은지 빈 침상이 없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을 향하고 있다. 여긴 간호사들 목소리도 환자들 신음 소리도 더 크다. 맞은편 침상에 중년의 남자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입원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참 아이러니다. 살기 위해 일을 하는데 일을 하기 위해 아픈 몸도 쉬지 못한다니.
아들이 왔다. 나는 잠 못 잤을 아들이 걱정인데 아들은 어미 걱정에 눈이라도 가리라며 수건을 올려 준다. 인간의 몸은 참 신기하기도 하다. 그렇게 환하고 시끄러운데도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깐잠깐이지만 잠에 빠졌다. 우리 몸은 살기 위해선 필요하면 언제든 자기 방어를 하는가 보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들에게 변동 사항이 생기기 전 아침이라도 먹고 오라고 보냈다. 간호사가 이름을 부른다. 1인실밖에 없는데 입원할 거냐고 묻는다. 하루 사용료 45만 원도 지옥 같은 응급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다인실 신청만 해두면 병실이 나오는 대로 배정해 준다는 걸 알고 있어 망설일 이유도 없다. 아들에게도 연락이 갔던지 무조건 가자며 아침을 먹다 말고 뛰어왔다.
난생처음 간 대학병원 야간 응급실. 다시는 절대로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