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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Sep 23. 2021

추석아! 잘 가

태풍 찬투와 해상 출동


                  

                   저항   


                  독수리는

                  바람의 저항이 없으면

                  날 수가 없고


                  고래는

                  물결의 저항이 없으면

                  뜰 수가 없다


                 사람은

                 어떻게 저항해야

                 살 수가 있나

                           - 천양희-




심술궂은 14호 태풍 찬투가 희비의 쌍곡선을 잘생긴 탤런트 송승헌 씨의 굵은 송충이 눈썹보다 더 진하게 내리그어 버렸다. 느림보 거북이가 중국 상하이 앞바다에서 3일간 뱅뱅이 놀이(?)를 하는 통에 출동 스케줄이 엉망으로 꼬여버렸다.  

    

17일 금요일에 나갈 출동이 태풍 피항 지시가 내려오면서 16일 목포 대불부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진도군 해역으로 출항을 나가게 된 것이다. 원래 300톤 중형함정은 출동기간이 4박 5일이다. 당최 날씨가 도와주지 않은 5박 6일간의 힘들고 긴 출동이었다.   


   

출동 첫째 날

10월 20일,  21일 2 일간 하반기 해상종합훈련을 앞두고 있어 팀워크 훈련과 실제훈련을 실시했다. 1만 시간의 법칙, 반복 숙달 훈련, 꾸준한 팀워크 등이 긴급 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됨을 머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반대로 가슴은 진정 하기 싫다는 이율배반적 순간의 인간적 반응.


점심 식사 후 13시에 시작해서 각 파트별 (항해, 안전, 기관) 관련 훈련을 실시하고 나니 17시가 넘어 저녁 먹을 시간이 다됐다. 지친다, 진심. 진정 반복하는 교육 훈련은 작게는 자신의 게으름을 몰아내고 거창하게는 성공에 다 다를 수 있는 최고의 훌륭한 교육 방법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지루하고 하기싫다.


" 명절인데 이렇게 까지 해야 해요? " 하며 제비 새끼처럼 주둥이를 삐죽 내민 동료 오순경의 입에 집게손가락으로 세로 1자를 만들어 자물쇠를 채워준다.


현지 기상 바람 8~10, 파고 0.5~1미터, 대체로 맑고 양호


      

출동 둘째 날

요즘 진도 앞바다에는 조기와 병어 갈치 꽃게 조업이 한창이다. 업종들이 다양하다 보니 소위 말하는 내 구역 어장 싸움이 치열하다. POINT 즉, 물고기가 많은 좋은 자리를 선점해서 그물을 쳐 놨는데 모르는 척 후발 주자가 슬쩍 발을 담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역사 속 고구려, 백제, 신라 영토분쟁, 영역싸움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실 거다.    


   

오후 2시. 00호에 외국인 선원이 체류 허가증 없이 불법체류 중이니 단속을 해달라며 민원신고가 접수되었다.

원래 조류가 센 해역인데 오늘따라 풍랑이 더욱 거 세다. 단정(고속 고무보트) 팀을 꾸리고 6명이 탑승후 조업 중인 어선에 접근해서 정밀 검문검색을 실시, 다행히 불법체류자는 없다.


2시간 가까이 주변 어선 3척을 더 검색하고 복귀, 조심스레 크레인으로 단정을 본함으로 끌어올리고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다행이다. 부상 없이 사고 없이 또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서.


현지 기상 바람 10~12, 파고 2미터, 대체로 흐림


출동 셋째 날

추석 연휴고 어제의 검문검색 피로를 감안 금일은 특별한 일과 없이 자기 계발 시간을 갖자는 달달한 부장님의 멘트가 함 내 스피커를 통해 기분 좋게 흘러나왔다. 명절에도 꾸준히 좋은 글들을 올려 주시는 우리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들을 보며 커피도 한잔하고 여유롭게 보낸다.


겨우 30분 지났는데 " 민원신고 접수, 단정 내림 요원 배치" 방송이 흘러나온다. 순간 '이런 젠장 좀 사이좋게 지내고 조업들 좀 하지'  어쩔 수 없이  사우나실 수온주 올라가듯 짜증이 확 올라온다. 신고내용은 어제와 같다.

단정을 내려야 하는데 날씨가 어제보다 더 안 좋아 걱정이다


파도를 뚫고 검문을 하러 떠나는 동료들이 꼭 친동기간 같은지라 마음이 짠하다. 어선에서 토해내는 바닷물이 파도와 함께 단정으로 쏟아져 신발과 바지가 흠뻑 젖어 두 시간 넘게 고생만 하고 성과 없이 본함으로 복귀했다.


현지 기상 바람 20, 파고 2.5미터 이상, 오후부터 풍랑주의보 발효 예정  

                                 높은 파도 속 어선 검문검색 중


출동 넷째 날

특별경비구역 내 기본경비 중 바로 옆 해경서 관할 구자도 인근에서 김양식 작업을 하던 중 두 사람이 물에 빠져 1명은 배를 붙잡고 간신히 구조됐으나  1명은 실종자가 발생했으니 수색을 실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역시나 기상은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로 좋지 않다.


경비함정이 좌우로 10도 넘게 흔들리며 요동을 친다. 조타실서 당직을 서는데 구토가 나고 정신이 혼미하다. 오랜 시간 파도 밥을 먹고 있는데도 멀미는 여전히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풀리지 않는 세계 수학 7대 난제 중 하나인 리만 가설처럼.  

   

해가 질 때까지 샅샅이 수색을 했으나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아 애가 탄다. 얼른 찾아야 하는데 명절에 가족들은 얼마나 걱정이 되실까?


현지 기상 바람 16~18미터, 파고 2미터, 시정 양호     



태풍 찬투 피항 기간 포함, 총 5박 6일간의 출동을 마치고 추석날인 21일 오후 2시에 목포항 전용부두에 입항했다. 오후 4시 KTX를 타고 두 시간 후 익산 집에 도착, 아들 딸과 송편과 배, 후다닥(?) 치킨을 먹으면서 아빠의 해상 일과를 얘기해 주지만 두 녀석의 공감 수준은 거의 ZERO에 가깝다. 재미없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고전 동화를 마지못해 들어주는 표정들 하고는....



 오늘 아침, 아메리카노 1잔을 옆에 놓고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멀미를 삼하게 한 탓인지 육지에서 48시간을 보냈는데도 컨디션이 영 시원찮다. 땅이 흔들리는 육지 멀미가 아직 진행 중이다.

 

강아지 토토와 함께 한 아침 산책길. 노인 일자리를 위해 어르신들이 정성으로 조성한 해바라기 꽃길.

활짝 핀 노란 해바라기 수 백송이가 머리를 숙이며 나를  반겨준다. 그래 너 이번 출동도 애 많이 썼다 야

꽃이 주는 조용한 위로가, 가만가만  내 마음을 쓰담 쓰담해주는 따뜻한 손길에 힘이 불끈 솟는다.

오메 좋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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