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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는 좋아합니다

참 미련한 욕심

by 파랑나비

욕심 없는 삶

박 넝쿨이 우거져 있다면

초가삼간도 좋아요

밤새 지붕 위에 내리는

달빛이야 풍성할 테지요.

다정한 눈빛을 가졌다면

참 좋겠어요.

날 진실로 사랑해 주고

또 나도 사랑하고픈 사람은.

인정 하나로 한 세상

살다 가면 되는 것

남은 목숨의 세월

따뜻한 가슴 하나로 살래요.


- 정연복-



적당히 있어도 괜찮아. 나름 내 인생에 만족하고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데 뭘.

하면서도 사업에 성공해서, 재테크를 잘해서, 혹은 운 좋게 로또에 당첨되어 값비싼 외제차를 끌고 서울 한복판에 고급 아파트를 구입한 친구를 보면 솔직히 부럽다.

돈을 완벽하게 초월하지 못한 내가 속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힘이 세다.


생명이 제일 소중하다 배웠고 그게 당연하다 여기며 살고 있지만 가끔 그 진리를 역행하며 사는 사람도 본다.

정말로 뭣이 중한지 잘 모르는 사람들.


밤바람이 제법 쌀쌀해지던 작년 늦가을 저녁 여덟 시경

파출소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바다에서, 멸치잡이배 일명 (개량안강망, 7.93톤) 1척이 배위로 물이 넘쳐 들어와 침수가 되고 있다며 구조 요청을 해왔다. 침수선박 발생 시는 사람을 먼저 구하고 배수펌프를 가동해서 배에 고인 물을 퍼내서 배의 상태를 정상화시키면 거의 해결이 된다.


전 속력으로 밤바다를 달려 팀원 4명과 함께 연안구조정을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바람은 거세고 파도는 높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바다 날씨가 험악하다. 선박은 이미 오른쪽 선미 3분의 1 정도가 물에 잠겨 곧 가라앉을 것처럼 아찔한 상황이다.


갑판 위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멸치를 잡을 때 쓰는 굵은 그물은 반쯤 물에 잠겨 얽히고 설켜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추고 있고 , 멸치 상자에 보관되어 있던 국물용 은빛 멸치들은 허연 배를 드러 내놓고 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다.


침수선박 에는 선장과 선원 2명, 총 3명이 타고 있었다. 어선으로 접근해 재빨리 구명조끼를 던져주고 선원 2명을 구조정에 옮겨 태웠다. 그사이 구조대 팀원 2명은 슈트를 입고 멸치 잡이 배로 이동을 시작한다.

갑판 위로 넘어 들어오는 바닷물의 양이 어마 어마 하다. 사람 허리까지 물이 차서 가지고 간 배수펌프를 설치해 보려 해도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


마이크를 잡고 선장에게 지원 선단은 불렀는지 묻고, 연안구조정으로 옮겨 타라고 얘기를 해봐도 바람이 맞은편에서 불어오니 , 나의 목소리는 오래전 종영한 KBS 예능 프로그램 가족오락관 ‘고요 속의 외침’ (귀 막은 상대에게 어떤 대상을 설명하는) 게임처럼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허공을 헤맬 뿐이다. 도통 대화가 되질 않는다.


기상이 점점 악화되면서 현장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돌아가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2백만 원어치 그물을 포기 못한다며 버티는 선장.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목숨 값은 얼마인가?

멸치 잡는 그물 2백만 원어치가 목숨보다 소중 할 수도 있다는 게 그저 기막혔다.


배 위에 실린 무거운 그물만 던져버려도 배의 전체적인 무게가 줄고 배가 떠오르면 배수펌프 가동이 가능할 것 같은데 재산을 지키겠다는 집념이 이토록 무섭다.

결국 어선의 주위를 돌며 그저 세 사람의 인명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을 뿐이다.


침수선박.jpg


잠시 후, 동네 같은 선단 대형어선 2척과 보령 구조대, 인접서인 군산해경 경비함정이 현장에 도착 후, 구조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배수펌프 6대를 동시에 가동해 물을 퍼내면서 바닷물이 줄어들자, 침수선박을 대형 어선 2 척이 쓰러진 사람 부축하듯 양쪽에서 침수선박을 차고 항 포구로 조심스레 운항을 시작한다.


밤 열두 시가 넘어 항 포구에 입항하니 침수선박 가족들이 박수를 치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러나 글쎄, 오늘은 뭔가 우리 팀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애초 출발할 때부터 휴가자가 있어 인원도 1명이 부족했고 현장에 도착해서도 평소 연습한 데로 일사불란하게 초동조치를 못 한 것 같아 입맛이 썼다. 아무래도 팀워크를 다시 맞춰봐야 할 것 같다.


자연의 엄청난 위력 앞에 인간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낀 힘든 하루였다.

긴장이 풀리자 물에 젖은 솜처럼 온몸이 축 처지면서 정신까지 아득해지는 것 같다. 어쨌든 그 밤, 우리들은 무사히 생명을 구했고 상황도 잘 끝났다.


파출소에서 믹스 커피를 마시며 웃고 있는 선장을 보고 있자니 묘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물만 포기했어도 구조작업이 훨씬 빠르게 진행됐을 텐데 당신의 그 욕심이 화를 불러 자칫 생을 마감할 뻔하지 않았냐고 떨리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소리를 침과 함께 꿀꺽 삼켜버렸다.

안 하는 것보다 많이 해서 화를 부르는 게 말 이 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


다음날 아침, 항포구 백반집 식탁에 멸치 볶음이 올라왔다. 물엿으로 적당히 코팅하고 견과류를 넣고 깨를 뿌린 볶은 잔멸치가 유난히 고소하고 맛있다. 평소 비린 것을 싫어하는 최 순경도 이날 아침 멸치는 참 잘 먹는다.

사연이 있는 멸치라 그렇겠지.


식사를 마치고 순찰차에 올라타는 순간, 코 끝에 와닿는 고소한 깨 볶는 냄새가 천지간에 가득하다.

바야흐로 은빛 전어의 계절이 돌아온 것인가? 전어 배들과 곧 전쟁이 시작되겠군.




인간의 욕망은 모두가 덧없어 마치 물거품 같고 허깨비 같으며 야생마 같고

물속에 비친 달 같으며 뜬구름 같다. - 화엄경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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