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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May 20. 2022

오월의 이별

어느 해녀의 죽음


해삼


바다에서 나는 산삼, 극피동물

 해삼류에 속하며 크기는 10~30센티

 몸의 빛깔 : 밤색 혹은 갈색 얼룩

서식장소 : 바다 밑바닥

잠수복을 입은 해녀가 수심 10미터 이내의 연안어장에서 물속에서 잠수하여 채취하며 4~5월에 많이 잡힌다.

가을부터 맛이 좋아지기 시작하여, 동지 전후에 가장 맛이 좋다.



출동 전날 수산물 센터에 들러 저녁거리로 광어를 구입했다. 사장님이 서비스로 해삼과 멍게를 맛이나 보라며 조금 챙겨 주셨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딸이 “딱딱하고 짭조름하고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어” 한다.

‘암만! 니들이 벌써 해삼 맛을 알면 자식 걱정 없이 내 팔자가

한여름 태양빛에 속절없이 늘어나는 엿가락 처럼  쭈욱 늘어져 활짝  폈겠지.'

딸을 향해 빙긋이 웃어주었다.


20년, 파출소 근무 중 신록이 푸르러 가던 5월 이맘때쯤 일이다.  

다른 날 보다 유난히 조용하던 평일 오전 11시경으로 기억한다. 해상순찰을 막 마치고 들어와 서류 정리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긴급하게 구조요청을 하는 전화도 아니었고 불법을 단속해 달라는 민원신고도 아니었다. 소속 파출소 관내에서 사망사건이 발생한 것 같으니 나가서 현장을 확인해 보라는 상급 관서(보령 해양경찰서) 지시였다.


파출소에서 현장까지는 차로 십분 거리.

포구가 아담하고 평소 큰 어선은 없어 작은 어선들이 아침 일찍 부부조업을 나갔다가 오후 4시경 이면 배들이 거의 입항하는 작은 포구의 어촌이다.


굳이 특별함을 찾자면 주말이나 공휴일에 동죽을 캐기 위해 혹은 소금을 뿌려 맛(키가 큰 조개 종류)을 잡아보려는 행락객들이 많아 치안수요가 증가한다는 포구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순찰차를 운전해 장순경과 함께 도착하니 사고 현장은 이미 경찰서 해당 부서에서 어느 정도 수습을 했고 사망사고가 발생한 선박에 선장이 아직 타고 있으니 입항하는 대로 기다렸다가 인근 병원으로 데려오라는 업무지시를 별도로 받았다.


잠시 후 어선이 입항을 하고 허가 없이 애써 잡은 해삼을 바다에 방류하고 선장에게 사고 경위를 물었다.


해마다 5월이면 연안해역에 해삼이 풍부하게 생산되어 채취 손길이 부족해 제주도에서 비싼 일당을 주고 물질에 익숙한 해녀를 데려와 작업을 시키고 선주는 포획한 해삼을 유통해서 소득을 올리고 있다며 선장이 알려주었다.


사망한 해녀는 물질 경력 20년이 넘은 배테랑 제주 서귀포 출신으로 나이는 50대 후반.


해삼 작업 시 평소에는 바닷속으로 해녀가 물질을 들어가면 선장과 줄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고 잠수시간이 지나면 배는 엔진을 쓰지 않고 해녀가 안전하게 작업을 마치고 올라올 수 있도록 기다려 준다.


그날의 일진이 사나웠는지 그녀의 명운이 그뿐이었는지 해녀가 올라와야 할 순간에 선장이 실수로 엔진을 써서 후진을 한 것이었다. 실수로 인한 완벽한 사고사

1분당 회전 횟수가 어마어마한 날카로운 프로펠러에 그녀의 얼굴이 강타당한 것이다. 즉사였다.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한 사고였다. 동료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답답했는지 선장도 연달아 담배를 피워댔다. 현장에서 사진 채증을 마치고 그녀의 유품을 정리했다.


그토록 허망하게 세상을 뜬 그녀의 남은 물건이라고 해봐야 낡은 잠수복, 작은 손가방과 그 속에 든 지갑, 그리고 평상복 한 벌이 전부였다. 


 해물 보관 칸 옆에 덩그러니 놓인 그녀의 낡은 잠수복(슈트)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 파도에 쓸리고 바위에 긁혀 낡고 헤져 바늘로  군데군데 깁고 본드로 때운 흔적들이 신산했을 그녀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었다. 낡은 잠수복이 곧 그녀였고 그녀의 인생 그 자체였다.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아들 결혼식은 다가오는 6월 초. 집안의 커다란 경사를 꼭 열흘 정도 앞두고 큰 일을 당했다. 아들 집사는데 얼마라도 보태주고 싶어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광주에 도착해 3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와 바다에서 화를 당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고 하는 유명한 격언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가슴에 와닿은 멋진 말이 이날 이 순간만큼은 까닭 모를 분노가 되어 골을 따라 정수리로 솟구쳤다.


오래전 내가 살던 시골 집에 샘이 없어,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마을 공동 우물에서  매일 아침 물을 길어 나르시던 고된 노동을 하셨던 울 엄마처럼, 그녀도 무엇인가 살기 위해 억지로  푸른 바다 깊숙히 헤엄쳐  들어간 것은 아니었을까?


한여름 뙤약볕에서 고된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시원한 냉수 한 사발 들이키고 카악 하고 목을 헹구시던 엄마는 들일을 나갈 때면 항상 살에 붙지 않는 물방울무늬 얇은 블라우스와 몸빼바지를 입고 나가셨다.


속 없는 아들은 “와~ 엄마는 뭘 입어도 참말로 이빼. 하면 ”오메 썩을 놈“. 하시며 가자미 눈을 뜨고 흘겨보셔도 입꼬리는 항상 하늘로 승천해 있었다.


엄마의 삶과 그녀의 삶이 닮아 있었다. 도대체 자식이 뭣이 라고 저렇게 가없는 사랑을 주시는 걸까?


계급과 체면을 지켜야 한다며 댐에 막혀 흐르지 못한 물처럼 갇혀 있던 내 심장 속 눈물이 봇물 터지듯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그날 그녀의 잠수복이 새 옷이었더라면 나는 조금 덜 아파했을까?


20분 후 읍내 병원에 도착해 의사의 검안을 마치고 검시를 위해 누워 있을 살아생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녀를 위해 편히 가시라고 머리를 숙여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이제 좋은 엄마라는 무거운 무게를 내려놓고 그녀의 애달픈 넋이 하얀 나비가 되어 푸른 하늘을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시라고 염원했다.


생계를 위해 바다와 인연을 맺고 일하다 갑작스레 가족과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하는 연안 안전사고가 올해는 단 한건도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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