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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Jun 06. 2022

망종 날 국수 한 그릇

보리탈곡


 

망종

24절기 중 아홉 번째 절기

벼 보리 등의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망종까지는 모두 베어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한다.


        

망종인 오늘 점심으로 국수를 말아먹었다.

국수를 처음 먹었던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보리 탈곡하던 날이었다.

2 모작이 가능한 남부지방에서 늦가을에 파종을 해 본격적인 모내기철이 되기 전 이듬해 6월에 수확이 가능한 것이 보리농사다.

보리는 망종(6월 6일)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다.


산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고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보리가 피기 시작했다.

온통 초록의 보리밭은 바람이 불면 큰소리도 없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등하 교길에 앞서가는 친구들과 보리 목을 뽑아 적당히 크기로 자르고 끝을 납작하게 살짝 씹어 풀피리를 만들어 불고 다녔다.


피어나는 보리 모가지를 쓰다듬으면 보들보들한 감촉이 손바닥을 간질이고 그 보드라운 털 속에 노란 알맹이가 실하게 숨어있었다.


낭창낭창 휘어지던 가는 털이 까끌까끌 하다

가 빳빳해지고 창처럼 꼿꼿하게 서는 날이면 보리가 다 익었다.


땡볕을 견디며 누렇게 익어가던 황금들판에 그 당당함과 화려함이라니.


보리가 익으면 아버지와 엄마 나는 숨이 턱턱 막히는 더운 날씨에 보리를 베고 묶어 보리로 높은 탑을 쌓아 올렸다.


창끝 같은 보리 스 락(까끄라기 사투리)이 팬티 속까지 들러붙어 온몸을 고문하듯 찔러 댔다. 보리 스 락에 비하면 벼는 온순한 처녀의 고운 머릿결처럼 부드럽다.

 

보리탈곡을 하는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다.

경운기 머리와 탈곡기에 긴 벨트를 걸고 회전력으로 탈곡기를 돌려 보리를 탈곡기에 척척 집어넣으면 드르륵 소리가 나면서 보리 알맹이는 오른쪽 가마니로 떨어지고 앞쪽으로 보릿대가 일정한 속도로 눈 쌓이듯 척척 쌓였다.


12살인 사촌동생 재준 이와 히히 거리며 갈퀴를 이용해 열심히 보릿대를 옮겨 마법사 인양 높은 성을 쌓아갔다.


한 시간 가량 보리탈곡을 하고 더운 날씨애 땀을 흘려 진이 빠질 때쯤 할머니와 작은누나가 국수를 가득 삶아 새참으로 이고 고개를 넘어 밭에 도착했다.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시원한 얼음물에 국수를 풀고 설탕을 듬뿍 넣고 한 바퀴 휘휘 저은 후 후루룩 입으로 빨아먹는다.


별다른 양념이 없어도 고된 노동 끝에 먹는 국수 한 그릇은 꿀맛. 천상의 맛이다.


맛있게 먹던 우리 지역의 맹물 설탕 국수만 먹다가 열일곱 살 장흥읍내 고등학교 친구 집에 가서 친구 어머니께서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진하게 우려 김가루와 고명을 얹어준 화려한 국수는 생애최초 문화충격(?)이었다.    

시골 촌놈은 국수를 이렇게 화려하게도 해 먹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요즘은 국수 전문점에서 맛도 독특하고 비주얼도 멋지고 영양

까지 배려한 특급 국수가 숱한데도 그 시절 깊은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특별할 것도 없던 그 시절 설탕 국수가 그토록 깊은 맛이 났던 것은 온 가족이 함께 땀 흘리고 둘러앉아 마주 보며 웃어주던 사람의 온기와 미소였으리라.


“아야! 뭐 넣은 것은 없어도 많이 먹어라 그래야 또 힘쓰제

어디선가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2~3시간 노동을 하고 나면 힘든 보리탈곡은 끝이 난다.

보리탈곡을 하고 나면 여지없이 밤새 끙끙 앓았다.


7~8월 한여름 땡볕에 보리를 말려서 수매를 하면 보리는 춘궁기 돈이 말라 힘든 농촌살림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내어주는 고마운 작물이었다.

   

국수 한 그릇이 아득한 추억을 불러왔다.


육수가 있는데도 넣지 않고 정수기의 시원한 물을 뽑아 설탕을 뿌려 국수를 말고 있는 나를 딸아이가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아빠 그게 무슨 맛이야? 아우 그냥 딱 봐도 밍밍하겠네”한다.


“하하하 그렇지 밍밍하지? 이게 아빠 추억 맛이다 추억 맛”


망종 날 국수 한 그릇이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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