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지만 요리사입니다.
오전 12시 “1부 식사” “1부 식사” 함정 내 스피커를 통해 송 순경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늘 점심 메뉴는 제육볶음, 양배추 쌈, 콩나물 국이다. 여기에 고추 양파를 된장에 찍어 먹는 나름 웰빙 식단이다.
지난 2월, 정기 인사발령에 따라 함정 근무 중이던 의무경찰 3명이 갑작스레 함정을 떠나게 되었다.
승조원의 70프로 이상이 전입직원으로 교체되었고 의경까지 없다 보니 함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실내 외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식사 해결 등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자잘하고 궂은일들을 도맡아 처리해주던 의경들의 공백은 너무 컸다.
순경들은 당직 등 기본업무는 물론이고 밥과 청소 같은 허드레 일까지 해내느라 말은 안 해도 얼굴을 보고 있으면 금방 사표를 던질 기세다. 3박 4일 출동기간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게 가장 큰일이 되었다.
총원 회의를 거쳐 몇 가지 생활수칙을 만들었다.
각자의 청소구역을 정하고 해상 출동 중 아침 한 끼는 각자 알아서 먹고 점심과 저녁은 각 해당 직수에서 당직교대 후 준비를 하고 설거지는 경사급 (7급)에서 도와주는 걸로 의견을 모았다.
다행히 승조원 중 몇 명은 요리에 소질이 있다.
자칭 고봉민 김밥 사장과 사촌이라고 우기는 고솔찬 경사. 소리 없이 요리에 강한 그는 항상 유튜브를 보며 수술용 라텍스 장갑을 끼고 요리를 한다. 매번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먹인 후 함정 직원의 맛에 대한 반응을 테스트해보는 우리 배의 진정한 요리 장인이다.
이정진 경장은 싱글의 자유분방함을 요리에 접목시킨 자투리 부식 활용 기본 생활요리 대가다. 자취 경력이 길어서 왼손잡이 특유의 빠른 칼질로 볶음이나 탕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선 굵은 음식들이 투박한 아빠의 요리를 닮았다.
임재혁 순경은 헬스를 열심히 해서 몸이 건장하다. 나는 그를 임동석이라 부른다. 별명답게 덩치에 맞는 넉넉함으로 고기 요리 내공 삼 갑자의 달인이다. 더운 날 수육을 넉넉하게 삶아 취사장에서 땀을 흘리며 고기를 써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송영준 순경은 하얀 얼굴에 미소가 고운 사람이다. 의경 출신인 그는 국을 잘 끓이고 비빔밥도 뚝딱 잘 만들어 준다. 다부진 체격이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비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렇게 네 사람이 주축이 되어 매번 소중한 식사를 해결해 주고 있다.
먹을 부식과 식단을 짜고 취사장 청소까지 깔끔하게 해결해 주는 똑똑한 두뇌를 가진 어린 왕자 같은 김승환 경장, 함정 내 행정서무로서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해 주고 있는 깡이 좋은 김찬 순경이 우리 배의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지난 시간 우리는 준비도 없이 간신히 두 출동을 뛰고 새로운 전입 멤버와 입사 경력 2년 미만의 신임 순경들 과부산 다대포 정비창으로 45일간 수리를 갔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팀워크는 고사하고 일상의 모든 면에서 삐걱 거리며 잡음이 일었다.
상사는 부하 직원들이 하는 양이 맘에 안찬다고 투덜거리고 부하들은 일이 너무 많고 힘들다 하소연을 해댔다. 중간에 낀 나는 하루 해가 저물고 다음날 아침 해가 밝아 오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부안으로 복귀했다. 위도 앞바다로 출동을 나오면 항해 당직 파트너는 신임순경 김찬이다. 이제 4개월 된 신임 순경이다.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한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해내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일머리가 있고, 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도 기본업무를 익숙하게 차고 처리하는 데 필요한 최소 시간은 짧게 잡아도 3개월 이상은 걸린다.
매일 행정 일과 시스템 입력 등 잡무를 처리하느라 바쁜 김순경을 도울까 하여 식사 준비를 했다. 메뉴는 평소 집에서도 자주 하는 김치전과 계란말이.
꼴랑대는 배 위에서 음식을 하기란 쉽지 않다. 바다는 멀리서 보면 한없는 낭만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김치전은 반죽이 너무 질어 바삭함이 없고 계란말이는 식당표를 흉내 냈다가 옆구리가 터져 실패했다.
식탁에 올리기 다소 민망한 요리가 되었지만 부장이 했다고 티 안 내고 맛있게 잘 먹어 주는 동료들이 고맙다.
남자들 손으로 하는 요리라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매끼 해주는 음식들에 동료의 따뜻한 마음과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특제 표 양념으로 들어가 있어 간이 좀 안 맞고 밥이 좀 설어도 맛있게 잘 먹어준다.
출동 때마다 요리를 해주는 동료들의 마음과 손길이 곱고 설거지하는 손들은 귀하다.
발령 후 4개월이 지난 지금 숱한 어려운 고비들을 넘기며 우리들은 이제 겨우 간신히 팀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몇 달째 도착하지 않고 있는 식기 세척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가뭄에 단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처럼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