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기상 악화로 위도 파장금 항에 배가 묶여 있었고 야간 당직 서느라 깊은 잠을 못 자 피곤했지만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우리나라 체력 평가에는 달리기와 윗몸일으키기가 필수 항목으로 들어가 있어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피평가자 들은 힘든 것 같다. 50살이 넘으니 매년 하는 평가가 이제는 귀찮고 버겁게 느껴진다.
물론 나이에 맞게 각 항목마다 평가 기준이 있어 나름 배려해놓은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평가 항목은 근력, 근지구력, 심폐지구력, 유연성, 민첩성, 순발력
등 6개 항목이다.
평가 방법이 어느 한 과목을 넉넉하게 잘해서 좀 부족한 종목을 메꿔주는 게 아니라 여섯 평가 항목 중 한 항목만 만점을 못 받아도 1등급을 받는데 실패하는 다소 납득하기 힘든 평가 시스템이다.
배드민턴을 10년 넘게 하고 있어서 순발력이나 지구력 등은 연령 대비 월등한 성적으로 점수를 상회했다. 문제는 유연성 테스트다. 얼마 전 고장이 난 허리 때문에 팔을 앞으로 쭉 뻗고 평가 기준선까지 최대로 숙여야 하는 허리 굽히기가 당최 되지를 않는다.
억지로 상체를 앞으로 굽히니 “으아~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허리가 찌릿찌릿하다.
올해 내 나이 기준 유연성 테스트 기준점수가 1등급은 13.9 2등급은 9.3 3등급은 4.7이다.
내 점수는 1등급과는 한참 거리가 먼 7.5 거의 3등급이라 보면 맞다
'이 종목은 좀 없어지면 안 되나?' '에이 2002년도 지방도로에서 뒤차가 추돌사고만 내지 않았어도, 허리 수술만 안 했어도 잘할 수 있었는데' 뭐 이딴 식의 구차한 핑계를 대 본다.
젊은 평가관이 2회 차 기회까지 주었지만 유연성 평가는 확실히 결과가 좋지 못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이 한 과목 때문에 올해도 1등급을 못 받고 3등급을 받아 속이 상했다.
이건 뭐 요가나 필라테스라도 해서 유연성을 길러야 하나 생각이 많아진다.
작년에도 꼭 이맘때 이런 기분으로 똑같은 고민을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보냈다. 일 년을. 생각은 하지만 고민하고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무심해지는 나 자신의 어리석을 탓해본다.
승진하는데 체력평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큰 것도 아니어서 잠시 잊고 지내다가 평가 시기가 되면 무엇이든 좀 해야 하나 하는 간사한 생가을 반복하는 잊힌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 같아서 스스로 막 애잔하다.
한해 한해 나이는 먹어 가는데 어떤 평가를 받거나 내가 노력한 결과물(사격, 수영 같은 평가, 교육, 훈련 등등)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일상이 썩 달갑지가 않다.
기억력이 자꾸 떨어지니 암기를 해서 문제를 푸는 승진시험이 나 팥죽 땀을 흘리며 오래 달리기에 매달리며 헉헉댄다거나 하는 일련의 테스트들을 투덜 되고 귀찮아하면서도 끝까지 해내고 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애처롭다는 얘기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절로 어깨춤을 출 텐데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니 즐겁지가 않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아름답게 표현하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잘 살고 있으니 스스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요새는 그저 흘러가는 데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순발력 테스트를 시작하기 전 친절한 사무실 후배가 “부장님 이거 뛰다가 많이들 넘어 지시거든요 조심하세요. ”하며 살갑게 챙겨준다. ‘걱정 말거라 인마! 나 아직 겁나 짱짱하단다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주 좋은 성적으로 거뜬히 미션을 완성하자 주변에서 “오~ 아직 살아 계시네요. 턴 시간이 굉장히 빠르시네요” 한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이고 나이 먹어가는 선배에 대한 립서비스 인지 뻔히 알면서도 기분이 좋다. 싱긋 웃으면서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으스댔다.
이날 다친데 없이 체력 평가는 잘 끝났지만 개인적으로는 체력 평가보다 건강지표인 인바디 검사에 더 관심이 갔다. 인바디 검사란 몸의 구성 성분인 수분, 지방, 단백질, 무기질을 분석하여 비만 분석뿐 아니라 영양상태가 좋은지, 몸이 부었는지, 뼈가 튼튼한지 등 인체 성분의 과부족을 확인하는 검사이다.
나는 스스로가 봐도 너무 날씬한데 이 기계가 원하는 적정 체중이 62킬로다. 일명 경도 비만. 20대 미 청년으로 돌아가 슈트를 소화할 나이도 지났는데 중년의 후덕함과는 거리가 먼 너무 칼날 같은 수치다
52세 된 중년 남자 몸무게가 62킬로 라면 문제가 좀 있을 것 같다.
계량화된 수치와 세상의 기준에 맞추다 보면 피곤 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맛있는 음식 먹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면 그게 큰 행복이다. 앞으로도 눈에 보이는 세상 평가기준에 집착하지 않고 객관적 잣대에 연연하지 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좀 더 많이 하며 살고 싶다.
행복은 늘 가까운 곳에 있으니 구속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지천명에 맞은 여여한 삶을 꿈꾼다.
장마라는데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바람만 휑 세차게 불어댄다. 너무 불어 정신까지 사납다.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바삭한 부추전과 정읍 유명 막걸리 송명섭 생막걸리가 급 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