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에서 1시간 30분 거리. 군산에서 후배와 합류하여 새만금 간척지를 지나 야미도 신시도를 거쳐 무녀도를 지나 선유도 선유 2리에 도착했다.
군산에는 고군산 열도로 불리는 섬들이 줄을 서듯 나열해 있다. 뱃길로 드나들던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같은 아름다운 섬들을 도로가 뚫리고 다리가 놓이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가 있게 되었다.
정 많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후배 택일이는 선유도에서 나고 자랐다.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은 동생을 나는 선유도 섬 총각이라 부른다.
동네 입구에 주차를 하고 적당하게 좁은 골목길을 지나 야트막한 담벼락들이 어린 시절 시골집을 걷듯 정겹고 푸근하다.
카페에서 바라본 장자도 앞바다
4년 전 여름에 뵀을 때랑 다름없이 부모님들께서는 여전히 따뜻하시고 살가우시다. 인사를 올리고 집을 한 바퀴 돌아본다.
마당에 데크를 입혀 새로 짠 큼지막한 평상이 눈에 들어왔다.
인심 넉넉한 주인을 닮아 물건들도 널찍널찍 크고 튼실하다.
부지런한 부모님 손길이 그대로 묻어있어 집 안팎이 깔끔하다.
꽃을 좋아하시는 아버님은 집 주위에 무궁화를 심고 화단에 해당화 금계국 채송화 패랭이 제라늄 해바라기 백합을 심었다. 꽃향기가 기분 좋게 코를 찌른다. 아버님 덕분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여름에 피는 노란 꽃들이 참으로 곱다. 해풍에 하늘 거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발랄한 섬처녀의 뒷모습을 닮았다.
낚시 어선업을 하시는 두 분은 이제 세월에 순응하여 체력이 허락한 만큼만 내 집을 찾아 주는 민박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팀만 손님을 받는다.
보통 바다낚시는 도시락 한 개 주고 1일 1인 기준 승선료로 기본 7~8만 원에서 10만 원 이상을 받는다.
이곳에서는 1일 숙박과 바다낚시, 매끼 다른 음식을 준비하셔서 삼시세끼 밥상을 내주시는 값이 13만 원이다.
요즘 같은 높은 물가를 감안하면 엄청나게 혜자스런 가격이다.
태생이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안 주인은 칠십 고희 연세가 무색하게 해물을 이용한 신 메뉴를 계발하시고 손님들에게 먹이면서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들을 보면 세상 행복하시다고 한다.
아들 직장 동료가 왔다며 금방 한 상을 뚝딱 차려주신다.
엄청 커다란 상에 제철 해물을 재료로 한 건강 밥상을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주신다.
수 년째 민박 손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짜지 않고 삼삼한 간장게장, 싱싱하고 달달한 병어조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놓은 탱탱한 삶은 소라, 쫄깃한 갑오징어 볶음, 자연산 광어를 살짝 튀긴 후 간장과 물엿을 넣고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졸인 광어 조림....
술꾼을 위한 우럭 매운탕 그리고 가장 나를 행복하게 해 준 살이 꽉 찬 싱싱한 바지락 국, 거기다 섬에서 나는 각종 나물들, 땅심 좋은 선유도 밭에서 캐온 햇감자 볶음까지 .
다채로운 음식을 보며 잠시 뭐 부터 먹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잘 차린 건강밥상
“어머님! 이렇게 차려져 내주시면 뭐 남아요?” “가짓수를 좀 줄이시던가 가격을 올리셔야 할거 같아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말아 돈 벌자고 했으면 진즉 식당 차렸지?”
“찾아주는 손님들이 고맙고 요리를 하다 보면 자꾸 젊어 지니까 오히려 내가 훨씬 남는 게 많지” 하신다.
사랑이 가득 담긴 진수성찬에 세 명이서 밥을 세공기 이상을 먹었으니 최소 열 공기는 먹은 것 같다.
식욕을 주체 못 해 짜고 가 나서 몸을 거동 못하는 새끼 강아지 마냥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새로 놓인 다리를 건너 장자도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 앞 그늘막에서 장자도 섬 풍경과 멀리 관리도 풍광을 즐기며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셨다. 오른편으로 우뚝 솟은 대장봉이 보이고 이쁜 펜션들이 사이좋게 자리를 잡고 있다.
2년 만에 다시 온 장자도는 많이 변해 있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도로가 뚫리고 계발이 시작되면 생활은 편리해지는데 사람 사는 냄새는 희미해진다. 각종 노점과 펜션 , 카페가 빈땅에신축공사를 하고 있고 주차장에는 관광객들의 차가 가득하다.
2년 전만 해도 나름 섬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워서 혼자 산책하고 대장봉에서 텐트 치고 백패킹을 즐겼는데 계발의 바람을 타고 이제 그런 섬 풍경을 독점하는 여유로움은 앞으로도 결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급하게 변해가는 섬 안에서 변하지 않아 좋은 것들은 무엇일까?
좀 느리게 느리게 살면 손해나는 삶일까? 부질없이 허망한꿈이잠시 머리속에서 머물다 바람이 되어 쓸쓸하게 사라졌다
요즘 핫하다 는 카페에 앉아 동생들과 사는 얘기를 나누다 해상 출동을 나온 형사기동정을 바라보면 사진을 몇 컷 찍고 선유도로 귀가했다.
발전하는 삶이 싫은 건 아니지만 섬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훼손되고
같은 장소인데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 들 때면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었다는 상실감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서운함은 섬 총각 택일이네 정성이 가득한 건강 밥상을 받는 순간 까맣게 잊혀진다.
헛헛한 상실감을 넉넉한 인심이 채워주는 그런 기분이다.
선유도에서 잡은 싱싱한 소라
수 천년 전 신선이 거닐었다는 선유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물놀이 즐기고 주변을 산책하고 건너편 대장봉으로 떨어지는 서해 낙조를 바라보시라. 새로운 삶의 에너지가 뿜 뿜 할 것이다.
혹시 주인 맘대로(오마카세) 이 맛집을 가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두 달 전에 미리 예약을 하시라 말씀드린다. 아는 사람만 온다는 인심 좋은 맛집은 이미 7월까지는 예약이 꽉 차 있어 어쩔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