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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파랑나비
Jul 17. 2022
진짜 환자 맞으시죠?
닥터 경비정을 소중히
지난 출동 중 응급환자 이송 요청이 한 건 접수되었다.
신고 접수 시 다행스럽게 경비정은 위도 파장금항 주변 경비 중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이동 들것과 구호 약품 등을 준비하고 신속하게 위도 파장금 항으로 입항하여 환자가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 후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 부부가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보건소 소장과 함께 힘겹게 경비정에 도착했다.
접안시설인 바지에서 경비정으로 건너시기 힘들 것 같아 순경 두 명이 출입문 앞에서 부축해서 조심스레 경비정으로 옮겨 태워 드렸다.
식당에서 시원한 매실차를 한 잔씩 대접하고 어쩌다 다치셨나고 물었다. 오전에 양파를 캐러 가기 위해 이웃집 경운기를 얻어 탔는데 갑자기 출발하는 바람에 손을 놓쳐 할아버지가 땅에 떨어져 굴렀다고 하신다.
팔십이 다 되어 가는 연세에 땅에 떨어져 팔을 다쳤고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다. 병원에 가 정밀 검사를 받아 봐야 알겠지만 증상들이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다.
보호자로 동행한 할머니께서 “지난봄에도 사고가 나서 다쳤는데 한 번씩 저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니까” 하신다.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애라는데 손이 많이 간다며 속상해하셨다.
위도에서 격포까지 경비정으로 40여분. 두 분의 살아온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냥 보통의 평범한 인생을 잘 살아오신 것처럼 보였다. 노년에 둘이서 오붓하게 지내는 것은 좋은데 섬이라는 곳이 몸이 아프면 병원 가기 힘들다며 좀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맞는 말이다. 건강해야 섬 생활도 즐겁지 가족 중 누군가 갑자기 아프거나 사고로 크게 다치면 헬기를 요청하거나 그도 아니면 경비정에 응급환자 이송 요청을 해야만 한다.
날씨가 좋으면 헬기도 배도 마음대로 뜨지만 해상 날씨가 나쁘면 대략 난감해진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격포항에 도착했다. 친절한 119 구급대원이 두 분을 맞아 주셨다.
부부도 인연 따라오는 것이라고 모 작가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등이 구부정하고 걸음걸이는 다소 느려도 두 분이 서로 살뜰하게 챙기시는 모습이 아름답고 보기 좋았다.
내 황혼의 모습도 저래야 하는데 잘될지 모르겠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 부부로 산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할아버지께서 경비정을 내리며 마지막으로 내게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늙으면 내 옆에서 등 긁어 주는 할멈이 최고여. 남의 것 남의 사람한테 눈 돌려 봐야 다 부질없어”
이날 노부부 응급환자 이송을 마치고 나니 문득 기억에 남는 일이 떠올랐다.
작년 목포 근무할 때 삼시세끼 촬영으로 유명한 만재도에서 응급환자 이송 요청이
접수 됐다. 복통 응급환자.
진도군 서거차도 인근 해역에서 유동 경비 중 접수된 신고였다.
최대
로 속력을 올려 두 시간 후 만재도에 도착하니 한 쌍의 중년 남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를 인계받고 안전한 곳으로 환자를 이동시켰다.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환자 상태를 보니 어째 그다지 상태가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여자분이 복통으로 신고를 했다는데 환자치고는 나름 얼굴이 평온해 보였다.
다년간의 근무 경험으로 보아하니 척 봐도 일명 나이롱환자 같은 느낌적인 느낌. 육지에 내려봐야 확신을 하겠지만 거의 맞을 것이었다.
연인이나 가족들이 섬 투어를 하기 위해 1박 2일로 섬에 들어갔다가 무슨 연유 인지 마음에 변덕이 나서 여객선이 끊기면 이런 수법을 쓰는 생각 짧은 사람들이 간혹 있다.
바다 위에 닥터 경비정을 정말로 생사를 오가는 긴박한 순간에 놓인 진짜 응급 환자들이 이용을 해야 하는데 여객선비 몇 푼을 아끼거나 혹은 단순 변심으로 섬에서 자기가 싫어져서 가짜 응급환자 행세를 하는 것이다.
이런 얕고 낮은 이기심이 긴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되어 제때 치료를 받아야 할 누군가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 갈 수도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악천후 속에 파도를 뚫고 두 시간을 전속으로 달려 진도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두 사람.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선착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상태가 좋아졌다며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헐~ 이런 무개념 빌런들을 어찌해야 할지....
현행법상 처벌 규정도 없고 분명히 아팠는데 땅에 내리면서 다 낳았다고 하니 억지로 병원에 보낼 수도 없다.
그저 그 뻔뻔함에 기가 찬다. 인간들아 염치도 없이 그렇게 살고 싶냐? 마음속 싸다구를 시원하게 몇 대 날려 보냈다.
바다 위의 엠블런스로 불리는 닥터 경비정. 그 존재의 이유를 귀하고 가치 있게 바라봐 주자.
내 목숨이 귀하면 남의 목숨 소중한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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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가까이 하며 살고있는 사내입니다 기억에남는 현장일화, 소소한 일상을 써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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